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말을 함부로 하는 것. 망령되게 말해 본인의 입지를 스스로 우습게 만들고 상대를 곤혹스럽게 하는 말을 망언(妄言)이라고 한다.

망언하면 먼저 일본이 떠오른다.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주로 과거사 문제나 영토문제로 외교적인 결례를 넘어 국민감정을 자극해왔던 일련의 흐름이 '망언시리즈'로 인식돼 버려서 그럴 것이다.

일본의 망언 시리즈의 출발은 1868년(고종 5년), 청나라 광동에서 발행하는 중외신문에 난 기사로 부터이다. 일본 유신 지도자인 팔호순숙(八戶順叔)이 "신라왕자 천일창(天日槍)이 일본에 내조(來朝)한 이래 삼한이 일본에 종속됐고 풍신수길의 조선원정 후부터는 조선의 왕이 5년마다 한 번씩 일본 에도(江戶)에 와서 대군을 배알하고 조공을 바쳐왔는데 근간에 이를 폐했기 때문에 지금 일본에서는 조선을 토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말한 것이다.

결국 사죄를 받아내긴 했지만 주기적으로 도발해대는 망언들은 "36년간 일본통치는 한국인들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다"라는 구보다 망언에서 극에 달했다.

그런데 이제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할 계제가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경쟁이라도 하듯이 퍼부어 대는 이 나라 지도층들의 망언은 이미 일본을 압도하고도 남을 수준이 되었다.

이정호 국가기후변화적응(KEI) 센터장은 건배사에서 본인의 아버지가 동양척식회사 마지막 사장이어서 일본은 '어머니의 나라'나 마찬가지라며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단다.

안양옥 장학재단 이사장은 "학생들은 빚이 있어야 파이팅도 생긴다"라며 국가장학금의 무이자대출 비율을 늘리는 취지에 더해 발언했다 물의를 빚었다.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국민은 개돼지' 발언으로 막말에 종지부를 찍었다. 결국 파면 결정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도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도의원에게 '쓰레기'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가 하면 사드문제에 대해서도 부적절한 의견을 내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송영선 전 국회의원의 중국에 대한 '거지떼' 발언 또한 신중하지 못한 망언으로 자칫 외교적 문제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 모든 망언들이 한두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이 분들이 다 더위라도 먹은 게 아닐까 차라리 계절에 탓을 돌리고 싶기도 하다.

망언의 이면에는 단순한 음주나 과로로 인한 심신미약도 물론 있을 수 있겠지만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들이 일정한 수준의 권한을 가진 자리에 올랐을 때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현상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망언의 기저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나 객관성을 상실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자아가 권위로 포장된 채 행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문(素問)의 '궐론(厥論)'에는 "양명(陽明)의 궐증(厥證)은 전질(癲疾)이 있고 달리고 소리치려 하며 복부가 그득하고 잠을 자지 못하며, 얼굴이 붉으면서 열이 나고 헛것을 보며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다.(陰陽之厥, 則癲疾欲走呼, 腹滿不得臥, 面赤而熱, 妄見而妄言)"라고 망언의 병증을 소개하고 있다. 요즘 같으면 위에 언급한 분들이 쏟아내는 말들이 차라리 병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믿고 싶다.

공자는 아들 백어(伯魚)에게 시(詩)를 배우지 아니하면 말할 수 없고, 예(禮)를 배우지 않으면 바로 서지 못할 것이라 했다. 공자는 인격 도야에 의한 인간 완성의 최고 방편으로 예술을 들고 있다. 시에서 얻은 풍부한 감흥을 예로써 다듬고, 악(樂)의 화(和)를 얻어 인간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일연선사는 삼국유사에서 "옛날에 성인이 예악(禮樂)으로써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로써 가르침을 세웠다(禮樂興邦 仁義設敎)"라 했다.

망언이 횡행하는 이 시대에 예악을 다시 강조하는 것은 개인경영이나 국가경영에 있어 아직도 유효한 지침이기 때문이다. 조화와 질서의 중요함은 재론할 여지도 없이 늘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겸손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성군들은 모두 자신의 치세를 예악으로 정비하였다. 예컨대 요임금은 대장(大章), 순임금은 대소(大韶)라는 음악을 일으켰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진흥대왕이 우륵에게 음악을 배우게 하여 신라의 국악(國樂)을 열었으며 세종대왕은 직접 보태평·정대업·여민락 등의 정악을 작곡하여 왕도정치를 완성하려 했다.

'입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제 몸을 베는 칼이로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넣어 두면, 가는 곳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라는 경구가 있지만 어찌 입만 다물고 사는 게 상책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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