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프랑스 간 최초의 접촉은 1784년 천주교에 심취해 북경에 간 청년 이승훈과 그에게 세례를 베푼 프랑스 선교사 그라몽의 만남이었다고 전해진다.

또 조선 헌종 13년에 고군산열도(古群山列島)의 한 섬에 프랑스 군함 2척이 난파해 표류했는데 섬사람들은 이들을 극진하게 보살펴 돌려보냈다. 이들은 떠나면서 감사의 표시로 시계 등을 선물했는데 시계가 똑딱똑딱 소리를 내자 섬사람들이 모두 놀라 부정한 악귀를 놓고 갔다며 연일 굿을 벌이는 해프닝이 있었다고도 전해진다.

당시 죽은 선원을 해변에 묻고 돌아갔는데 그 무덤을 양총(洋塚)이라 불렀다. 후일 그 선원의 자손이 이 섬을 찾아와 유골을 파 갔는데 섬사람의 조상묘를 잘못 파 남의 유골을 들고 가는 바람에 또 한 차례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1886년 한-프랑스 수교 후 문을 연 프랑스 공사관의 첫 민원이 바로 이 고군산도의 조상 유골을 찾아달라는 청원이었다 하니 나라간 인연치곤 사뭇 흥미롭다. 우리나라를 공식적으로 처음 방문한 프랑스 사람은 모방이라는 선교사였다.

그는 평북 의주 국경선을 넘어올 때 상투를 틀고 얼굴에 노란칠을 했으며 두루마기를 입고 환자로 가장해 속임수 입국을 했다 한다. 거꾸로 프랑스에 최초로 발을 디딘 한국인은 김옥균을 암살한 흥종우로, 수교 4년 뒤인 1890년의 일이었다.

우리와 프랑스는 1866년 병인양요로 인해 험악한 국면을 맞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던 것 같다. 임진왜란 전후에는 성능 좋은 '불랑기(佛狼機)'라는 프랑스 화포가 들어왔었는데, 그런 연유로 프랑스를 '불랑기국(佛郞機國)'이라 일컬었고 그 후엔 서쪽에서 왔다 해서 '불란서(佛蘭西)'라 불려왔다는 설도 있다.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 중일 때 영국군함 선장 베실홀이 가져온 큰 갓을 쓴 채 긴 담뱃대를 들고 있는 우리 노인의 스케치를 보고 "죽기 전에 이 큰 모자를 쓰고 긴 담뱃대를 한 번 물어보고 싶다"고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다.

이런 프랑스를 조선시대 사람들은 한번 오가는데 8년이 걸리는 바다 한 가운데 있는 멀고 큰 나라쯤으로 생각하고 그 나라의 왕은 아픈 백성들의 환부를 한 번만 어루만지면 거뜬하게 낫게 하는 신통력의 소유자로 알고 있었다.

프랑스와 우리는 올해 수교 130주년을 맞아 작년 말부터 다양한 기념행사와 문화교류를 진행해 오고 있다. 조금 철 지난 얘기지만 파리에서는 프랑스 전통의 브리오슈빵에 단팥 앙금을 넣은 한국빵 코팡(Kopain)이 잘팔리고 있어 올랑드 대통령이 한·불 정상회담에 다녀가면서 이제 두 나라는 함께 빵을 나눠 먹는 가족 같은 친구 '코팽(Copain)'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프랑스에서 지난 연말 파리의 동시다발 테러에 이어 또 테러가 발생했다. 이번엔 세계적인 휴양지인 남부 해안도시 니스다. 14일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바스티유의 날)을 맞아 많은 군중들이 축제를 즐기는 순간 튀니지계의 청년이 대형 트럭을 인파 속으로 돌진시켜 사상자가 100명이 훨씬 넘었다고 한다. 아직까진 IS의 소행인지 외로운 늑대의 단독범행인지 아님 사회에 불만을 품은 개인적 행위인지 명확한 판단을 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프랑스에서는 작년부터 지금까지 12건의 크고 작은 테러가 발생했다. 프랑스 국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까지 극도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우리는 수교 130주년의 의미 있는 해를 잘 꾸려가기 위해 많은 메뉴를 준비해 두고 있어 안타까움이 더하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도 지난 5월 샹제리제오케스트라와 프랑스 유명 피아니스트 그리고 샹송 가수들을 초빙해서 '프랜치 위크'라는 수교 기념행사를 진행한 바 있다. 10월 말에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현대음악 전문악단인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의 내한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미 국어화된 프랑스 언어에 생활화되어 있고 그들의 노래 샹송에서 보여 지듯이 음정이나 박자보다 음색으로 승부하는 프랑스인의 감성에 이미 마음을 많이 내어 주고 있다. 드골조차 오래 전 자백했듯 좀처럼 다른 문화나 나라를 칭찬할 줄 모르는 우월주의가 지배하는 프랑스로부터 한류를 인정받았다.

며칠 전 끝난 유로 2016에서 자국에서의 결승임에도 포르투갈에게 우승을 내어주면서 끝내 의연했던 프랑스의 오랜 전통, 톨레랑스(관용)가 무모한 테러로 인해 무뎌지지 않기를 바란다. 한불 수교 130주년도 의미 있게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