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석 칼럼위원

▲ 김한석 전 거제문인협회장
눈을 다시 뜨지 않아도 그 광명을 현란하게 보고 있다. 주체할 수 없이 은혜에 젖어있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차피 몸을 추스르고 정신을 차린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들의 일상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혼백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곳간이 항상 가득 채워지기를 원한다.

글로벌 세계의 퇴행을 유발하고 바야흐로 블랙시트(Brexit)적인 순수 동일체 통일시대를 선호하는 환상에 광분하고 있지는 않는가? 왜냐하면 곳간이란 것도 알곡식으로 된 올바른 일이라야만 입고(入庫)가 허락된다.

민족통일 운동은 공동체를 지향하는 겨레의 역사라면 가족과 가정의 보호와 나아가서 단일 순수국가의 실현은 인류 개개인의 본심일지라도 한계가 있다. 어떤 일이든 희망이 돼 온갖 일에 앞서려면 출발점이 명확함으로써 실현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출발의 마음 작동은 진지할 수밖에 없다. 제20대 국회의 출발에서 온 국민의 기대는 냉엄한 관찰로 더욱 굳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 의지가 뭉쳐 승화되는 과정을 매일 목마르게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는 첫째 사심이 없어야 한다. 법안을 내놓는 의원일수록 목욕재계하고 나설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 의안이 구체성 이전에 불결하고 부정한 출산이라면 태아의 생명조차 수명이 믿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모성애를 추론해보아도 그 어미가 횡령·표절·사심 등의 정신박약 증세를 보이는 데는 민의의 눈높이가 절대로 속아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러한 사람들이 나라의 지도자가 된단 말인가? 일의 시작과 출발점이 더디다는 것, 그러나 확실한 원점만이 실체를 거느린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단체의 구성원이 돼야 일을 실현하는데 추진력이 생긴다. 의견표출의 다리 역할을 하고 최고 의안의 가결을 이끌어내는데 공을 세우면 다행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도 포퓰리즘적 저해성과 폭력적 악습을 시인하면서 우선 되고 봐야 하는 성취감에 도치된다면 나라의 장래와 겨레의 진정한 결속은 더딜 것이다.

일의 선급이 있고 순서가 있듯이 시작은 완전무결한 원점에서 발의되고 논의되고 결실돼야만 다시 새로운 출발과 발전과 그리고 변화의 기회와 모태가 된다는 것은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제도권과 기성다중 사회를 폄하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다. 문제는 내 안에 있다.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도 긍정적인 측면도 모두가 나와의 연관 속에서 우리들은 일상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내가 위치한 근원적이고 본래적인 원점에서 파악하는 세계는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이러한 능력을 자아내는 희망과 신뢰와 끝내 믿음을 가지는 것도 우리들에게 사실이 돼있다. 그러므로 한 겨레의 공동체적 노력은 비폭력과 생명으로 넘쳐나야 한다.

블랙시트적인 극도의 좌편향, 우편향 등의 이기주의가 국익을 훼손한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북핵(北核)의 위험성은 우리 스스로 그 틈새를 허용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만시지탄은 있지만 핵 대응 전략이 시급한 만큼 우리들 내면에 물을 수밖에 없다.

국토 안위의 긴급한 상황에 크나큰 연관이 돼있는 우리나라의 우주항공 로켓 발사체의 추진여부는 더 이상 연기되지 않도록 여야가 예산 확보에 응집력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국민이 선출한 의원을 구성요소로 하는 국회는 입법·재정·기타 중요한 일반국정에 참여하는 권능을 부여받았다. 수레에 얹은 추진력은 정치지도자들의 몫이다. 의회 민주주의를 한 목소리로 이끌어 감으로서 장애요소를 풀어갈 수 있다. 이기심과 당략적 근시안이 아닌 보완과 포용의 정치를 국민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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