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 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대통령이 총탄에 맞고 민주화 운동으로 대한민국이 혼란한 시기였던 초등학교 6학년 가을에 처음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다. 긴 시간 버스를 타는 일도 처음이었지만, 동네를 벗어나 말로만 듣던 서울에서 하룻밤 자게 된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새 옷을 꺼내 입고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사실 수학여행 일정을 알고부터 이미 난 서울을 몇 번이나 다녀왔는지 모른다. 높은 빌딩을 키 큰 소나무에 엉킨 칡넝쿨 타듯이 오르내리고, 창경원에 동네 뒷산에 있는 토끼·노루·산돼지를 몰아넣고 뛰어 놀기도 하면서, 경복궁과 남산 케이블카를 수도 없이 달음치는 꿈을 꿨다. 전쟁 드라마에 나오는 멋있는 소대장을 꼭 만나고 싶어 매일 방송국을 드나드는 기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서울 구경은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높은 빌딩은 쳐다보는 것으로 끝이었고 방송국에서는 소대장을 직접 보여주지 않았으며, 창경원이나 경복궁에서는 단체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초라한 모습의 사진만 남기고 여행은 끝이 나고 밤늦은 시간 집에 돌아왔을 때 온 동네 사람들이 마중을 나와 줬는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정확하게 2박3일 동안 한 번도 생각나지 않던 어머니 얼굴을 보는 순간, 밀려오는 안도감과 함께 왜 그리 울컥했는지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 아들이 아닌데도 함께 마중을 나와 계시던 이웃 사람들이 그렇게 정감있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함께 있지 않으니 그 안타까움이야.

익숙한 것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는 동안 설렘의 긴장은 삶이고 여행의 시작이다. 익숙한 것들은 내게 새로운 감정을 요구하지도 않고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새로운 느낌과 변화하고 싶은 욕구는 여행을 통해 채우고 여행은 일상의 반성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요즘은 여행이 일상화돼 있고 해외여행 인구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가까운 중국이나 동남아에는 심심찮게 국내 사람들을 만나고 일률적인 관광코스를 다니다보니 여행 내내 얼굴을 보게 돼 헤어질 때 인사를 나눌 정도다.

여행은 감동이 사라지고 단체나 회사조직, 계모임에서 정해진 여행회사의 계획대로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의무가 돼버렸다. 국내에서보다 더 많은 술과 더 많은 삼겹살을 먹게 될 때가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소규모나 가족·연인·친구들끼리 짝지어 다니며 그 나라의 음식이나 길·역사·문화를 천천히 즐기는 모습으로 여행을 즐긴다.

중국 사람들과 우리나라 단체 관광객들 중 누가 더 시끄럽냐고 현지 가이드에게 물었다. 순간 현지 가이드는 당황하더니 솔직하게 말해도 되냐고 양해를 구하고서는 두 쪽 다 시끄럽다고 말했다. 웃고 넘겼지만 반성해 볼 일이다.

여행은 즐거워야 하고 여유가 있어야 한다. 굳이 그 지역이나 나라의 곳곳을 누빌 필요가 없다. 한 두 곳을 다녀오더라도 그 나라의 진정한 속면을 체험하고 돌아와야 내 곁의 편안한 사랑이 보인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이 새롭게 보이는 것은 여행을 준비할 때의 설렘, 다녀와서의 애틋했던 느낌, 함께한 친구들과의 우정이 여행과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먼 국내나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한국 사람들이 뱉어내는 공통된 말이 있다.

"아, 그래도 내 사는 동네가(한국이) 최고네!"

왜 최고라고 생각할까? 그건 익숙하기 때문이고 만나야 할 사랑이 있고, 다시 떠남을 보장해 줄 안식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행은 우리를 돌아볼 수 있어서 좋다. 여행은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또 하나의 나를 세상에 무심히 던져두고 지켜보는 것이 여행이다.

거제 경제가 힘든데 무슨 여행 타령이냐고? 사는 게 힘이 든다고 실망하고 그 '실망'에 익숙해지고 나면 먼저 무너지는 것이 사람일까. 아니면 경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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