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판 돈은 설주(卨主) 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주는 직접 노름판에 끼어들지 않지만 실제로는 노름판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이다. 설주는 노름을 조장하고 노름판의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설주는 분전노(分錢奴)라 부르는 거간꾼을 두고 있다. 분전노는 노름방에서 돈을 잃은 사람에게 뒷돈을 꿔주는 사람으로, 설주에게 돈을 빌려다가 노름꾼에게 돈을 대주고 그 이문을 챙겼다. 노름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꾼들은 분전노를 통해 설주에게 가축이나 땅 문서 따위를 헐값으로 잡히고 돈을 빌린다. 설주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사전(私錢)을 꿔주고 노름이 끝나면 고리의 이자를 붙여 받거나, 갚지 못하면 잡힌 물을 차지한다.

설주의 등장은 세간에 투전이 크게 번진 숙종 때부터다. 청나라에서 유행하던 투전이 숙종 때 들어와 영조 초기부터 마치 전염병 돌듯 도성은 물론 산간벽지까지 크게 번졌다. 오죽하면 당시 조정은 '투전이 도둑질보다 더 큰 해를 끼친다'며 금지하려고 애썼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투전이란 게 웬 놈의 물건이라 / 내 속을 이리도 끓인단 말이오 / 도둑놈처럼 내 치마를 벗겨가고 / 솥까지 팔아먹고 / 그때부터 연 사흘을 굶었는데 / 한 번 가더니 다시는 안 돌아왔소. / 밤중에 혼자 빈방에서 한숨만 쉬는데 / 어린것들은 울면서 잠도 못 잤더랬소' 남편이 투전에 미쳐 처의 치마를 다 벗겨가고, 솥까지 팔아먹으니 식구들은 굶을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상황이 생생하게 시로 전해지고 있다.

노름은 위험한 유희의 세계다. 지난 4월에는 5년 간 3천억 원대 불법 인터넷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며 호화생활을 누리던 현대판 설주가 덜미를 잡혔고, 5월에는 지금까지 검거된 불법 도박 중 가장 규모가 큰 1400억 원 규모의 불법 도박장을 운영한 현대판 설주가 붙잡혔다.

우리사회는 성실하게 일하면서 차근차근 내실을 다지기보다는 도박을 통해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과, 이들을 유혹하는 현대판 설주의 잘못된 만남이 사달을 낳고 만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