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지역경제가 말이 아니다. 모두들 매일매일 터져 나오는 지역 관련 기사에 촉각을 세운다. 나쁜 뉴스 속에서도 혹시 좋은 소식은 없을까 조그만 기대들로 안절부절이다.

최근에 터져 나온 대우해양조선의 각종 비리는 열심히 일하는 자사의 종사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역민 전체에게 엄청난 분노와 박탈감을 안겨 주고 있다.

전 사장들이 이미 배임 등의 이유로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나 축재(蓄財)는 워낙 다종다양하게 보아온 터라 솔직히 별반 새롭지도 않다. 오히려 암만 생각해도 경악스러운 일은 이미 구속된 전 차장 A씨와 그의 내연녀가 아닌가 싶다.

A차장이 횡령했다는 180억원이라는 액수는 상식적으로 일개 봉급생활자가 잠시 일탈행위로 빼돌릴 수 있는 액수가 아니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30여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비영리 재단이다. 180억은 인건비 포함 3년간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이미 오래 전부터 회사가 그렇게 어려운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빼돌린 돈으로 한 짓거리는 더 가관이다. 명품 패턴 가득한 옷을 입고 시계, 목걸이, 팔찌 같은 장신구로 온 몸을 치장한 촌스런 모양이 역겹다 못해 좀 안됐다 싶다. 또 그걸 무슨 자랑이라고 내연녀와 둘이 세트로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에 노출을 해 댔으니 간이 큰 건지 철딱서니가 없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돈을 빼돌린 기술도 참 단순하다. 같이 구속된 문구점 대표와 짜고 과다 계상된 금액에서 돈을 되돌려 받거나, 회사에서 근로자나 외국 선사 관계자들을 위해 제공해 주는 숙소를 친인척 명의를 빌려 또 과다 집행해 차액을 차지하는 등의 초보적인 형태가 대부분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도 각 기관의 감사를 정기적으로 받고 있지만 단돈 10만원도 규정에 어긋나게 집행하면 소명을 하거나 그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반납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관리를 받고 있는 상태라곤 하지만 도대체 이 회사의 감사 시스템이 최소한이라도 작동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아직 수사 중이니 조사가 다 끝나봐야 알겠지만 열심히 일한 다른 직원들의 자존심과 사기를 위해서라도 한 치의 여죄도 남기지 말고 발본색원해서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조선 성종실록에 보면 전국에 극심한 흉년이 들어 민심이 흉흉하고 굶어 죽는 백성들이 늘어가자 임금은 신하들에게 각자가 가진 재산들을 좀 내어 놓을 수는 없을까 타진을 한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임금의 뜻을 헤아려 제 재산의 일부라도 내어 놓고자 하는 이가 없는데, 진천에 사는 임복(林福)이라는 사노(私奴)가 무려 2천석의 곡식을 백성들 진휼용으로 써달라며 조건 없는 기부의사를 전해 왔다. 당시 노비 중에는 주인과 집을 따로 쓰면서 신분은 천하나 재산을 축척한 외거노비들이 제법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 농업기술로 쌀 2천석을 수확하려면 지금의 여의도 면적의 절반 가까이 농토가 필요했으리라 짐작된다. 엄청난 양의 통 큰 기부에 임금은 감화하여 임복을 면천(免賤)시켜 신분을 올려주는 것으로 상을 대신하려 했다. 이에 승정원에서 임복을 불러 의사를 물으니 자신은 되었고 4명의 아들을 면천시켜 주시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한명회, 이극배 같은 신료들은 당연히 면천을 통해 상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으나 대다수의 신료들은 국가기강을 문란하게 하는 일이라며 극구 반대하였다. 이에 임복은 쌀 1천석을 더 내어 놓고 4명의 자식을 다 양민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임복은 노비 신분으로 임금을 상대로 일종의 거래를 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전라도 남평에 사는 '가동'이라는 노비가 쌀 2천석을 나라에 내고 면천을 시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다.

실록 내용대로라면 그 동안의 우리 상식과 많은 차이가 있다. 드라마나 영화 속 노비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고도 쥐꼬리 만 세경을 받아 생활하는 것으로 그려지지 않던가.

하지만 실제 조선시대 노비는 사실상 경제의 주체였다 한다. 양반들이 현장에서 몸을 쓰지 않고 다 맡겨 놓다시피 하니 실질적인 경제의 동력은 오히려 노비였다는 것이다. 그 중에 재테크에 눈이 뜨인 일부 노비는 상상 이상의 재산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하니 '임복'과 '가동'이 그런 인물들이었나 보다.

A차장이 착복한 돈 중에 일부라도 적어도 임복과 같은 명분을 가진 곳에라도 쓰여 졌으면 지금의 어이없음이 조금 누그러질까 괜한 생각을 해 본다.

번 돈이든 훔친 돈이든, 돈은 다루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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