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아침에 출근을 하니 같이 근무하는 직원이 폰으로 사진을 보내 왔다. 간밤에 태어난 아기 사진이었다.

출산율이 낮기도 하거니와 주변에 애를 가질만한 지인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요즘은 이렇게 갓 세상을 마주한 애들을 보면 마음이 미묘하다.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또 걱정스럽기도 해서 마음의 색깔을 가름하기가 쉽지 않다.

인생이란 게 시작과 끝이 있는 게임이지만 그 시기를 본인의 의지로 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가끔은 타인의 생과 사를 통해 인생과 우리가 사는 세계를 관조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올랜드에서 총격으로 숨진 희생자들이나 런던에서 젊은 여성 정치인이 어이없이 죽음을 맞는 장면들을 보면 죽음이라는 게 태어나는 것 보다 훨씬 벼락같은 것이어서 문명이나 문화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다. 결과로만 보면 '기억하는 것'과 '기억되는 것'의 차이가 멀지 않았으면 하는 정도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수밖에.

얼마 전, 복싱의 전설 무하마드 알리의 부음이 지구촌에 전해졌다. 영웅을 만나기 어려운 시대라 현대사회에서는 스포츠 스타가 시대의 영웅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시절, 흑백텔레비전 속에서 알리가 포먼을 때려눕히고 포효하던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요즘에 와서 그가 쏟아냈던 많은 말들이 '어록'으로 남아 있지만 당시엔 떠벌이라는 별칭만 들었을 뿐 그의 진가를 제대로 알기가 쉽지 않았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던 알리의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린 노제에는 사람들이 마치 복싱 경기를 관람하듯 "알리! 알리!"를 외치고 차량의 경적을 울리며 세상과 작별하는 알리를 격정적으로 배웅해 줬다고 한다.

공개 추도식에는 그의 부인과 두 명의 전 부인 그리고 아홉 명의 자녀들이 같이 했으며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롯해 아놀드 슈와제네거·베이비드 베컴·압둘 자바·우피 골드버그 등 수 많은 유명인들이 참석했다고 하니 그가 안팎으로 참 분주하게 살았겠다 싶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파킨슨병에 걸린 채 불편한 몸으로 성화를 점화하던 모습은 인류에게 불굴의 의지를 넘어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 보게 했던 장면이 됐다.

그렇게 다사다난한 인생을 살았던 알리의 묘비명에는 그가 남긴 수많은 어록도, 그를 추모하는 어느 문필가의 멋진 글도 아닌 그의 신앙이던 이슬람의 전통에 따라 그저 '알리'라고만 새겨졌다 한다. 알리다운 반전이다.

그가 쉼없이 세상을 향해 던졌던 말들 중에는 인종과 종교 그리고 전쟁같은 인류의 과제가 모두 포함돼 있다. 그리고 알리는 가치와 방향이 어긋난 세상을 살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알리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가치에 집중한 것인지 모른다. 그런 자기중심이 알리를 강하게, 극복하게 만든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지난 3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묘비가 뉴욕의 어느 공원에 세워져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얼마 전 묘비를 세운 주인공이 30대의 젊은 예술가로 밝혀지긴 했지만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의 묘비를 세웠다는 것은 비록 법적으로 처벌을 면했다 하더라도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묘비에는 '미국을 다시 증오하게 만들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묘비를 세운 이는 "트럼프가 후세에 자신이 스스로 남기게 될 유산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고 싶었다"라고 자신의 의도를 밝혔다고 한다.

알리와 트럼프의 경우를 보면 사람들은 죽음이 가지는 절대성에 대해 두려움과 경외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봐진다. 그래서 또 다른 떠벌이 트럼프가 정작 자신의 진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어떤 묘비명을 새길지 사뭇 궁금해지기도 한다.

알리의 추도식에 편지를 대신한 오바마는 "무하마드 알리는 미국 그 자체였다. 자신만만하고 반항적이고 개척적이었고, 절대로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며 항상 운을 시험해 볼 각오가 돼 있었다. 그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 자유들, 즉 종교·발언·정신이었다"고 알리를 평가했다.

부인인 로니 알리는 알리가 임종 직전 "원통하다고 해서 투쟁을 포기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는 말라"는 것이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남긴 고인의 당부였다고 말했다.

미국 대중문화에 큰 발자취를 남긴 2500여명의 이름이 새겨진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에서도 유독 알리만 바닥이 아닌 벽에 이름이 걸려 있다고 한다.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밟히고 싶지 않다는 알리의 뜻을 주최 측에서 받아들인 결과다.

'알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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