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거제조선 위기극복 시민이 말한다①]이영춘 삼성중공업 전 상무

지난 39년간 몸담았던 삼성중공업을 떠 난지 6개월. 급격한 조선업 변화에 대해 이영춘 전 상무가 말문을 열었다.

현재의 조선 상황에 대해 이 전 상무는 10년 전 예견됐던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2015년 거제지역 양대 조선소가 연간 창출할 수 있는 작업시간(M/H)은 삼성이 4600만 시간·대우가 5000만 시간으로 대략 1억 시간이었다"며 "올해는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지만 문제는 2017년에 도래할 것으로 예측돼 있었다"고 말했다.

2017년에 예측된 일량은 삼성 2500만 시간·대우 2500만 시간으로 총 5000만 시간에 불과했다. 올해 가동수준으로 볼 때 지역 양대조선 중 하나는 문을 닫아야만 하는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이 전 상무는 "2016년에 들어서면서 올해 생산해 인도해야 할 드릴십이나 해양설비에 대해 선주사들이 인도를 유예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인도 시에 들어올 대금이 들어오지 못해 자금유동성 확보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문제들이 양대 조선소의 심각한 경영난으로 귀결돼 구조조정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이 전 상무는 조선산업 부활과 지역경제 살기에 대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대우조선해양 주인찾기 시급

첫 번째가 대우조선해양의 새로운 주인 찾기였다. 이 전 상무는 "대우조선이 언제까지 공적자금 투입으로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한국 조선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고 출혈수주를 막기 위해서는 3강 체재가 아닌 양강 체재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단기 실적으로 CEO가 평가를 받는다면 그 누구든 실적위주로 영업전선에 뛰어 들 수밖에 없고, 이는 필연적으로 과당경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산업의 특성상 수주에서 인도까지는 보통 3~5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며 "일단 수주부터 해놓고 보자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조선소 경영은 조선소에…정부는 제대로 된 지원 고민해야

▲이영춘 삼성중공업 전 상무가 지난 9일 본사를 방문해 지역조선업 위기극복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조선업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훈수를 두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상무는 "이 세상 모든 회사는 흑자경영을 지상목표로 삼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며 "조선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획일적으로 자구안을 수립해 시행하라고 다그친다면 세계적인 경쟁력 우위에 있는 드릴십과 LNG운반선·해양설비 등은 앞으로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정부의 지나친 간섭을 우려했다.

그는 "'을'의 입장에 있는 기업은 정부의 강한 '갑질'에 휘둘려 잃어서는 안 될 기술 인력을 잃게 된다"면서 "그 기술 인력은 경쟁 상대국인 일본이나 중국으로 건너가 다시는 우리가 일어설 수 없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 전 상무는 그 예로 1·2차 오일쇼크 당시 조선산업을 축소시키고 대학의 조선학과 정원을 줄여 실패를 맛본 일본을 들었다. 당시 한국으로 건너온 일본 기술자들 덕분에 우리 조선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전 상무는 "조선소의 경영은 조선소에 맡겨야 한다"며 "정부는 조선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지원하면 좋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국이 조선업을 국가정책으로 정해 막강한 자금력으로 조선산업을 지원하고 있는 반면 우리 정부의 지나친 간섭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것이 이 전 상무의 생각이었다.

그는 "최근 선수금환급보증보험(RG)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지만 정부기관에서는 선수금환급보증보험을 들어주지 않으려 심사규정을 강화하며 보증료도 대폭 인상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현대는 13조원·삼성은 3조원의 사내 유보금이 있다고 한다"며 "특별고용지역 선포 등의 대책보다는 일감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데 선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정, 적극적 조선산업 지원책 아쉬워

거제시도 규제완화, 인프라 구축 등 보다 적극적인 조선산업 지원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전 상무는 "도장공장 하나 허가내지 못해 인근 고성과 함안, 부산 등지로 제품을 실어 나르고 있다"면서 "이는 과다한 물류비와 대기시간 발생 등으로 엄청난 경쟁력 약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전 상무는 또 "심각한 부지난 때문에 블록적치를 위해 타 지역으로 흘러나가는 막대한 임대료도 문제"라면서 "행정에서도 기능인력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육비 지원정책 등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 노사는 공동운명체 위기극복 경험으로 대처해야

조선업 노사는 한 배를 탄 공동 운명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 전 상무는 "외환위기 상황 당시 삼성의 부채비율은 760%였지만 지금은 300%선"이라며 "당시 노사는 고용보장을 조건으로 임금 동결, 상여 삭감, 복리후생 축소, 불요불급한 사항에 대한 특·잔업 금지, 유휴부지매각 등을 통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경험이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 전 상무는 위기극복을 위한 한시적 기구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는 "행정·교육·소방·경찰·은행원 등 고정급여가 나오는 직업은 조선업이 아무리 어렵다고 한들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이라며 "2년 동안이라도 한시적인 범 시민운동기구를 구성해 고통을 분담하고 어려움을 나누는 운동을 전개한다면 지역경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6년. 조선불황이 닥쳐 하루에도 수십 대의 이삿짐 차량이 거제대교를 건너던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는 이 전 상무.

그는 "모든 역량을 결집해 올해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내년을 견딘다면 반드시 거제에 밝은 빛이 비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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