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거리에 나서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졌다. 한낮엔 냉방기를 돌려야할 만큼 기온이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더 더워지기 전에 몸을 관리해야겠다고 다이어트 제품을 찾거나 헬스클럽에 회원 등록하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은 몸과 영혼, 즉 육체와 정신의 합일체다. 시대에 따라 또는 가치에 따라 육체에 비중을 더 두는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일반적으론 꾸준히 '지덕체'의 조화를 강조하고 전인적인 완성도가 높은 사람을 존중해 왔던 게 인류가 지향하는 보편적 문화였다.

현대사회를 들여다보면 대학에서 인문학이 퇴출되고 각종 매체에서 교양코너가 사라져 가는 것으로 봐서 최소한 '정신의 시대'는 아닌 것 같아 보인다.

가끔 홈쇼핑 채널을 보면 대부분 육체를 가꾸거나 포장하는 제품들로 넘쳐나고 있다. 이른바 '몸의 전성시대'처럼 보인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몸이 인간의 기초임은 틀림없다. 정신이나 영혼은 아직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다. 몸이 죽으면 사람도 죽는 것이니 몸이 중요한 걸 부정할 이가 누가 있을까.

그렇더라도 작금의 '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지나치게 말초적이고 반 정신적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간구성요소의 균형을 깨는 것으로 경계가 필요해 보인다.

요즘은 남녀 공히 매끈한 피부에 작은 얼굴, 큰 이목구비에 길고 날렵한 몸체를 원하고 있다. 심지어 이런 조건이 완성되고 거기에 어울리는 복장이나 장식으로 마무리되면 은근히 신분이나 계급의 상징처럼 여기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커리어 우먼'이란 표현의 이면에도 요즘은 이런 몸 중심의 사고가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커리어를 커리어로 보지 않고 외모를 보고 커리어우먼처럼 보인다고 표현하는 걸 보면 아연실색할 정도다.

사실 식량이 부족했던 농경사회나 산업시대 전에는 뚱뚱한 몸이 부의 상징이었다. 옛날 영화만 봐도 대개의 경우 마른 몸은 빈곤하고 지위가 낮으며 건강하지 못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뚱뚱함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계급으로 표현되고 있지 않던가. 지금 우리가 열광하고 있는 '서구적인 현대미인'이라는 이미지는 서구에서조차 부르조아 시민사회의 등장 이후에 나타난 이미지다.

특히 여성의 경우 예전엔 동서를 막론하고 뚱뚱함은 풍만함과 연결되는 이미지로 여성성과 생식능력과 직결된다고 봤다. 나이지리아의 에픽((Efik)족은 사춘기 소녀를 오두막에 격리시켜 많이 먹인 후 뚱뚱해져야 성인여자로 인정하는 통과의례가 있었다 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도 옛 그림들을 보면 미인이 결코 날씬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현재에도 남성들은 여성잡지에 나오는 모델처럼 깡마른 여성만을 선호하는 것 같진 않다. 그냥 다른 논리 속에 있는 기업들이 정한 과장된 기준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예로부터 몸과 관련한 많은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몸을 만든다' '몸을 가꾼다' '몸이 힘들다' '몸으로 때운다' '몸을 판다' '몸이 좋아졌다' '몸 밖에 없다' '몸을 낮춰라' '몸으로 부딪혀라' '몸이 부서져라' 등등.

가히 '몸의 문화'가 만연해 있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육체로서의 몸이 아닌 의지로서의 몸, 사회규범으로서의 몸, 시적언어로서의 몸 등으로 몸 이상으로 기여해 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의료기관이나 기업이 몸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개인이 가꾸는 몸과 사회적으로 컨트롤되는 몸 사이에서 몸의 주인과 사회적 통제시스템과의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해지는 큰 변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보여주는 몸의 '만들기'에만 열중하고 있다. 이것은 정신적 공황과 함께 시너지를 이뤄 사회적 건강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

이제부터라도 몸을 공공재로 봐야 한다. 건강한 몸의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공공의 영역에서 이뤄져야 한다.

노출이 불가피한 계절이다. 아름다움을 자랑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몸을 가꾸고 꾸밀 땐 몸에게 "너도 좋으니?"라고 한 번쯤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몸은 문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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