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시민리포터

▲ 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성전 꽃꽂이를 맡은 홍집사는 꽃 꽂는 일에 목숨을 건 사람이다. 매번 꽃을 꽂을 때마다 밤을 새며 기도하고 책을 사서 연구하고, 이런 강의 저런 강의를 쫓아다니며 열심히 배워 꽃꽂이에는 일인자가 돼야 하는 그런 사람이다.

홍 집사는 꽃을 꽂을 때 지극 정성을 다한다. 자기가 꽃꽂이를 하는 주일이면 수요일부터 금식을 시작하고, 토요일 꽃꽂이가 마칠 때까지 금식하며 보낸다. 토요일 새벽 꽃시장에 갈 때에도 밤이 새도록 기도한다.

꽃을 사는 시간도 굉장히 오래 걸린다. 그냥 쭉 훑어보고 척척 사는 것이 아니라 한 송이 한 송이를 손에 들고 하늘을 향해 치켜들며 주께 기도한다.

"주여, 이번 주에 받아보고 싶으신 꽃이 어떤 꽃입니까?"

꽃꽂이에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신경을 쓰기에 꽃꽂이가 끝난 토요일 밤이 되면 온몸이 부서지는 듯이 내려앉고, 쑤시고 아픈 것을 참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내일 예배시간에 아름다운 꽃꽂이에 대해 칭찬하실 목사님의 음성에 소망을 두고 지친 몸을 위로하며 잠을 청한다.

예배시간이 돼 아름다운 찬양과 간절한 기도가 울려 퍼지고 있으나 홍집사의 마음과 눈은 꽃에만 머문다. 예배시간 내내 꽃에 정신이 팔려 선포되는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목사님의 칭찬을 기다리지만 목사님은 예배 중에 꽃의 '꼬'자도 언급하지 않으신다.

혹시 예배당 문 앞에서 칭찬하실 수도 있기에 홍집사는 사람들이 다 나가기까지 기도하며 기다리다가 문에서 악수를 청하는 목사님께 공손히 인사를 드린다. "목사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이 주간도 승리하십시오, 홍집사님!"

꽃에 대해 칭찬 한마디 하지 않은 목사님 때문에 너무 큰 상처를 입은 홍집사는 김권사님께 전화를 넣는다.

"권사님 저예요. 꽃꽂이 홍집사! 평안하셨지요? 오늘 예배시간에 제가 너무 영적으로 눌려서 권사님은 어떠셨는지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어요. 오늘 목사님의 설교도 너무 힘이 없으셨어요. 영적으로 많이 무뎌 계세요. 그렇게 느껴지지 않으셨어요, 권사님?"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난 오늘 목사님 말씀과 예배시간 내내 너무 많은 은혜를 받아서. 지금도 남편과 그 얘기를 하던 중인데…"

홍집사가 더 이상 말도 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고, 다른 말로 잇기 전에 김권사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속이 상할 만큼 상하고 분이 풀리지 않은 홍집사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화요일 오전 교회 사무실로 전화를 건다.

"네 저예요, 꽃꽂이 홍집사. 저, 실은 제가 너무 몸이 아파서 이번 주에 꽃꽂이를 못하겠어요. 너무 많이 아파서 지금 링거를 맞고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어휴, 안돼요. 집사님이 우리 교회에서 제일 꽃을 잘 꽂으시는 분인데, 집사님이 못 꽂으면 누가 꽂아요? 오늘 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그렇죠? 할 사람이 없겠죠? 제가 할게요. 꽃을 꽂다가 하나님께 가게 되면 이 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예요"라는 대화가 오고 가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무실 직원은 아무 생각없이 "아, 그래요. 그럼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지요"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홍집사는 너무나 큰 상처를 받고 너무나 큰 시험에 들어서 더 이상 이 교회에 다닐 수 없다고 결정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어떤 생각이 드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금식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인정을 위해서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이름 내고 내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몸부림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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