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7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가요가 하나 있었다. 기억엔 당시에도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전국노래자랑'에 좀 점잖은 출연자들이 선곡해 나오는 주요 레퍼토리였다.

경연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전국노래자랑은 요즈음엔 노래실력보다 개최도시의 특징이나 미담 또는 특별한 행사를 연계시키는데 더 무게를 두고 있지만 당시엔 간혹 가수 등용문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곤 했었다.

'세노야'라는 서정적인 노래가 바로 그 점잖은 출연자들의 단골메뉴였는데 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산유화' 같은 노래도 그 무대에 오르곤 했으니 분위기가 참 고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 2~30대 젊은이들은 이 곡 자체를 잘 모를 것 같기도 하지만 좋은 곡은 시대를 초월해서 불리어지는 게 좋겠다 싶어 소개를 한 번 해 보고자 한다.

'세노야 세노야 /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세노야 세노야 / 기쁜 일이면 저 산에 주고 / 슬픈 일이면 님에게 주네//세노야 세노야 / 기쁜 일이면 바다에 주고 / 슬픈 일이면 내가 받네.'

가사에서 보여 지듯이 운율이 일정해 곡 붙이기가 용이하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단순명료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이 노래가 '노동요'라고 하면 쉬이 믿을 수 있을까. 노동요라고 하면 다소 격하고 역동적이어야 할 것 같은데 세노야는 선율이 미려하고 곱기가 딱히 비할 데가 없을 정도다.

이 노래는 제작진이 상당히 화려하다. 당연히 그 설화도 은근히 재미있다.

1968년 멸치잡이가 한창인 어느 봄날 시인 고은과 서정주는 진해에 소재해 있던 육군대학에 문학 강연을 가게 된다. 당시 고은은 염세주의 사상에 빠져 불면에 시달리며 저술활동을 해 나갈 때였다. 치유가 필요한 때 바다가 있는 곳으로 강연을 핑계 삼아 왔으니 당연히 용무만 보고 귀경하기가 아쉬웠을 것이다.

미당 서정주는 당시 출판사 편집실에 기거하며 동료 문인들과 술 마시기에 열중하며 낭만의 시대를 풍미하고 있을 때라 두 사람의 남행은 꽤 뜻 깊은 소풍이었을 것 같다.

강연 후 저녁 만찬에서 술이 몇 순배 돌자 미당이 육대총장에게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를 떠올리며 한려수도를 만끽하고 싶으니 함정을 한 척 내어달라고 요청했다.

만고의 명문, 적벽부. 인생무상·삶의 회의에 딱 위무가 되는 산문시로서 동파가 명월 적벽에 지인들과 배를 띄우고 놀다가 인생의 유한함을 절감하는 내용이다.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니 천지에 하루살이가 붙어 있는 것과 같고 망망대해에 한 알의 좁쌀처럼 보잘 것 없다는 그 시절 동파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미당의 무리한 요청을 육대총장이 받아 들여 해군함정을 수배해 줬다. 요즘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직무남용과 군기문란 아닌가. 하지만 세상이 어두울 때여서 따뜻한 마음의 배려로 두 시인은 권주가를 부르며 한려수도의 밤을 보내고 비몽사몽간에 새벽을 맞게 됐다.

서늘한 새벽바다의 해무를 뚫고 아득히 들려오는 구슬픈 선율. "세야, 노야, 세노야, 세노야…" 가까이 가보니 멸치잡이 배에서 그물을 잡아당기며 부르는 후렴구였던 것이다. 고은은 이날의 곡조가 잊혀 지질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 해 겨울 종로의 어느 선술집에서 그 날의 감동을 동석한 사람들에게 전했고 함께 자리했던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 즉석에서 작시가 된 것이다.

세노야의 작곡가 김광희는 내가 관여하고 있는 단체의 임원으로 있다. 그녀의 증언에 의하면 그 날 종로 술자리에 서울대 음대에 같이 재학 중이던 친구 최양숙이 친척 관계인 고은이 만든 자리이니 같이 가자고 해서 동석하게 됐고 한려수도에서의 감동과 즉석 시의 탄생을 보게 됐다고 한다.

당연한 수순으로 작곡학도인 그녀는 즉석에서 곡을 붙였고 성악도인 최양숙은 또 즉석에서 노래를 불러 보인 것이다. 최양숙은 이 인연으로 세노야의 첫 음반을 노래했고 요즘 같으면 크로스 오버에 해당하는 성악도의 외도가 시작된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면 이 노래의 배경이 고은의 고향 군산 앞바다로 소개되는 경우도 있지만 전술한 내용은 고은선생이 직접 확인한 내용이기 때문에 세노야의 공간적 배경은 남해안 지역이 되는 것이다.

나는 가곡과 가요의 경계에 있는 이 단아한 노래, 세노야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너무 부르기 어려운 노래들이 난무하는 세상에 다 같이 부를 수 있고 나즈막히 자연과 어울릴 수 있는 겸손한 노래가 좋다.

그런 서정성의 회복에 '세노야'는 딱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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