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증자(曾子)의 아내가 시장에 가려는데 어린 아들이 따라가겠다며 떼를 쓰자 "얘야, 집에 있으면 다녀와서 돼지를 잡아 맛있는 요리해줄게" 하며 아들을 달랬다. 시장에 갔다가 돌아오니 증자가 돼지를 잡고 있었다. "돼지는 왜 잡고 계십니까?"하고 묻자 증자는 "당신이 아이와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어린아이라고 못 지킬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어머니로서 아들을 속인다면 앞으로 아들이 어머니를 믿지 않게 될 것이고 그러면 장차 어떻게 교육을 시킬 수 있단 말입니까?"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었다. 하루는 미생이 애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제 시간에 약속 장소에 나갔지만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다. 때마침 폭우가 쏟아져 갑자기 개울물이 범람했지만 미생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결국 물에 휩쓸려 익사하고 말았다. 이를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고 한다. 사기와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약속을 지키는 일이란 참으로 중요한 덕목이다. 특히 정부나 정당, 입후보자 등이 어떤 일에 대해 사회 공중(公衆)에게 실행할 것을 약속하는 공약은 더 중요하다. 과거 19대 대통령선거에 입후보한 허경영씨는 당선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공약(公約)인지 공약(空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퍽 흥미롭다. 이명박을 구속하되 사랑의 열매 1조원을 기부하면 면책하고, 박근혜의 부정선거를 수사하되 결혼하면 면책하고, UN본부를 판문점으로 옮기고, 결혼하면 1억원을 주고, 국회의원은 무보수로 고시제를 실시한다는 등의 약속이었다.

국민들은 정치인의 공약을 증자처럼 지키기를 바라고, 정치인은 융통성 없이 약속만 지키려 했던 미생을 내세워 공약(空約)을 합리화하려고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국회의원의 공약 실천은 국회의원의 몫이 아니라 이를 지켜나가는지를 관리해야 할 유권자의 몫이다. 공약의 실천이 다음 선거에 지지와 심판이라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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