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북경올림픽을 마치고 1년쯤 지났을 때다.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의 산학협력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도시 공간을 공연장화 하는 프로젝트를 수행 중인데 도시 선정부터 진행에 이르기까지 의견을 취합 중이니 도움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비교적 잘 알고있는 거제와 통영을 중심으로 몇군데 장소를 택해 의견을 전달했는데 이후 이 사업은 용역·발주까지만 진도를 빼고 더이상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나중에 그 담당자를 사석에서 만나 보니 정책결정권자와 기업인들이 용역결과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후 몇몇 심포지엄이나 세미나에서 이런 주제들이 다뤄지긴 했었지만 별로 주목을 끌진 못했던 것 같다.

당시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이같은 논의가 활발했던 것은 북경올림픽의 개·폐막 연출을 맡은 장예모(張藝謀) 감독의 영향이 컸다. 그가 보여준 공연공간의 확장은 대단히 놀랍고 혁신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장예모는 중국 시안 출생으로 첸 차이거와 함께 중국영화 5세대 감독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우리에겐 1980년대 후반부터 연이어 내놓은 '붉은 수수밭' '홍등' '국두' 등을 통해 강렬한 색채와 메시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들 작품 모두에 출연했던 여배우 공리와 함께 칸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에서 연속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했다.

이후 너무 형식미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잠시 있었지만 유연한 변화를 통해 작업의 외연을 넓혀 나갔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할리우드의 투자를 받아 무협영화 '영웅'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 작품 이후로도 최근까지 '연인' '황후화' '진링의 13소녀' 등 꾸준한 영화작업을 통해 각종 영화제로부터 인정을 받아오고 있다.

어린시절 그는 국민당원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문화혁명기를 겪었는데 이 시절 다녔던 방직공장에서의 경험은 훗날 영화 '국두'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또한 서른이 다 될 때까지 농촌에서만 생활하다 우여곡절 끝에 베이징영화학교 촬영과에 입학하면서 영화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자신의 피를 팔아 카메라를 장만할 정도로 사진과 영상에 관심이 많았던 장 감독은 촬영으로 영화를 시작했던만큼 색채미와 화면구도 등 시각적인 면에서 뛰어났다.

가장 중국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영화를 지향하며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는 장예모는 이런 재능을 영화가 아닌 야외극에 쏟아붓게 되는 계기를 맞는다.

1997년 이태리 피렌체 극장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연출하게 되는데 이 공연은 이듬해 자금성의 야외 특설무대에서 주빈 메타의 지휘로 올려지게 된다. 2003년 우리나라에서도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돼 큰 화제가 됐다.

영화감독으로 성공한 장예모는 어느 날, 고향 '양삭'을 찾았다가 아직도 가난에 찌든 마을사람들을 보고 이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는 기획을 하게 된다. 마을에 내려오는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소재로 한 '인상유삼저(印像劉三姐)'라는 야외극을 기획하고 연출한 것이다.

중국 사람들의 자부심이 담긴 천하제일의 계림을 실제 무대로 삼고 낮엔 어업에 종사하다 저녁때면 배우로 전환되는 1000여명의 지역민들이 함께 펼치는 실경산수극의 첫 번째 작품이 완성된 것이다.

말 그대로 매우 인상적(Impression)이어서 뒤이어 제작되는 서호와 하이난 등의 지역에서도 '인상'이라는 시작말이 붙어 '인상 시리즈물'이 됐다.

'인상 시리즈' 외에도 각 지역의 특징을 살린, 이를테면 양귀비와 당 현종의 사랑을 그린 서안의 '장한가' 같은 야외극들이 10여편이 넘는다. 요즘 중국관광을 다녀온 사람들은 장예모의 이런 야외극 시리즈에 감동을 받고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티켓가격도 만만치 않다. 우리 돈으로 10만원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게는 천석부터 많게는 삼만석에 육박하는 좌석이 매번 거의 매진에 가깝다고 한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중국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국내 관광지들이 어떻게든 중국과의 연관성을 찾아내어 장예모의 프랜차이즈를 유치해 보려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장예모'가 답일지는 모르겠지만 공연예술의 변화에 주목해 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특히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차세대 성장 동력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는 우리지역의 경우 산업적으로 고민해 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웃나라 사람들에게 시인 백거이의 '장한가'에 화청지의 달과 산 그리고 강을 얹어 팔고 있는 중국인들이 신흥 IT강국 중국보다 더 부럽고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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