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언젠가 이 칼럼을 통해 우리 도시는 '크루(Crew)'의 도시'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크루는 항공기나 선박 그리고 열차에서 승무원으로 종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유럽의 봉건사회가 붕괴되고 신흥자본가들이 등장하는 과정에 '대항해 시대'라고 불리는 시기가 있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위시한 몇몇 나라들이 선박을 개량하고 항해술의 빛나는 발전을 이뤄내며 대발견의 시대를 이끌고 자본을 축적했던 시대를 말한다.

'대항해 시대'가 유럽인의 시각에서 나온 용어라 다소 불편해 하지만 유럽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르네상스시대의 문화융성과 더불어 다음 시대를 이끌어낸 역사적 전환기임을 부인할 수 없다.

대항해 시대는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씨앗이 됐고 훗날 제국주의의 기반이 됐다. 자본은 이전엔 꿈도 꾸지 못했던 영역의 일을 가능하도록 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문화예술의 향유였다.

중세시대까지 문화를 향유한다는 것은 글을 읽거나 그림을 보거나 또는 공연을 관람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런 문화활동은 특정계층의 전유물이었다.

공연물의 제작진부터 출연진 그리고 관객까지 모두가 왕족이나 종교지도자의 몫이었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독점구조였던 셈이다.

유희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 중 하나이다. 돈을 가지기 시작한 신흥자본가들은 문화를 샀다. 귀족들 틈에 끼여 공연을 보고 배역을 따내어 직접 출연을 하는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자본가가 뛰어들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 이런 자본의 투입은 문예부흥에 큰 역할을 했고 제작경험을 축적하게 했다. 일종의 프로덕션 개념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던 중 대항해 시대는 쇠퇴기를 맞았고 신흥자본가들은 새로운 투자처 또는 자본의 용처를 찾아야 했다. 그들이 주목한 것 중 하나는 바로 공연예술이었다. 바다의 자본을 육지로 끌어와 공연장을 건립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고용했던 선원들은 공연장 건립에 투입됐다. 선원들은 자연스럽게 공연장 건립 후 운영인력으로 재고용됐다. 초기 공연장의 모습은 놀랍도록 지금까지 비슷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공연장의 운영인력을 크루(Crew)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역사에서 기인한다.

최근 이런 크루의 도시가 위협받고 있다. 20년 이상 세계 조선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아온 명성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사실 그 징후까지 따져보면 꽤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근 도시들은 중복 투자를 하고 지금도 전혀 새로워 보이지 않고 전략적이지도 않은 유형의 투자를 고집하고 있는 것 같다.

4·13 총선에서 승리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로부터 촉발된 구조조정의 이슈는 새누리당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국민의당 안철수대표가 "내친김에 구조조정을 넘어 구조개혁을 해야한다"라며 사뭇 다른 의견인양 하면서 판을 키워 놓았다.

정부도 기다렸다는 듯이 '양적완화'를 내세우며 그 동안 건드리지 않았던 통화정책의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당분간 양적완화가 미칠 영향을 각자의 입장에서 따져보며 줄다리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경제용어에 어두운 국민들은 양적완화가 단순히 한국은행에서 돈을 푸는 것으로 인식하고 어려운 경기에 어떻게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결국엔 물가상승으로 이어져 고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경고보다도 당장의 단비가 더 절실한 듯 보인다.

거제시는 시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조선산업 위기극복 종합대책본부'를 발족하고 지역경제 위기극복 협의회도 구성해 운영한다고 한다. 또 정치권에선 고용위기지역 선포, 조선산업 특별고용업종지정, 일자리 희망센터 설치 등 대책을 강구한다고 한다.

수만 명의 종사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도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재래적인 해법으로 오늘의 난제를 풀어가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적 위기상황 논리에 운명을 맡겨 놓고 있을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다.

도시도 생성과 성장 그리고 쇠퇴의 과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역사에서 우리는 도시의 재건을 어떻게 이뤄내는지 배웠다. 현대에 와선 도시재생을 통해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이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그 옛날 유럽의 선주들이 그랬던 것처럼 창의적 발상을 해 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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