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에 들어갔다. 뜻밖에 만난 '只(다만 지)'자 때문이었다. 거제 장승포에서 지심도로 들어갈 때만 해도 이 '只(다만 지)'자가 나타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지심도(只心島)라는 이름을 역사탐방 안내판에서 읽고 난 후 섬이름에 대한 의미를 가늠하느라 생각을 모았지만 묘수가 없었다.

只, '다만 지' 또는 '외짝 척'. '지'로 읽힐 때는 다만, 단지, 짧은 거리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섬이름의 의미가 더욱 묘연해졌다. 

장승포에서 출발한 배는 채 20분이 되지 않아 지심도에 닿았다. 그래도 바로 지척에 빤히 바라보이는 것 치고는 시간이 제법 걸린 셈이었다. 섬은 발길 닿는 곳마다 과연 동백섬이라고 불릴 만큼 온통 동백꽃 밀림이었다. 동백나무로 터널을 이룬 오솔길이 이어져 섬의 운치를 자아냈다. 전날 내린 비로 길은 촉촉하니 흙먼지를 잠재우고 식물들은 싱싱함을 더해 코발트빛 바다와 어울려 힘을 발산했다.

폭이 500m, 길이 1.5㎞밖에 되지않는 작은 섬이지만 옹골차다는 느낌이 쏟아졌다. 거기다 11월 중순인데도 군데군데 동백꽃이 피어 있거나 붉은 꽃이 뚝뚝 떨어져 있는 것이 마치 봄나들이로 착각하게 할 지경이었다. 해식 암벽으로 이뤄진 해안은 낚시꾼들의 천국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샛끝벌여·노랑여·서정바위·노랑바위·찬물고랑과 같은 정다운 이름을 붙인 낚시터가 수없이 많았다. 일행 중에서는 망루에서 내려보다가 낚시에 물두하고 있는 낚시꾼들이 부러워 애타는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또 지심도에는 사전에 전혀 듣지 못했던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탄약고·포진지 같은 군사기지 흔적이 여럿 있었다. 한일합방이 된 뒤 이곳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하게 하고 섬은 일본군 요새가 됐다.

이것이 계기가 됐는지 지금은 국방과학연구소 건물도 있고 활주로도 펼쳐져 있다. 대부분 오솔길을 걷던 나들이객들은 새롭게 나타난 잔디 활주로가 신기해서 한바탕 뛰어보기도 했다. 작은 섬이지만 민박집도 아홉집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초라했다. 비수기인지라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더 썰렁하게 보였는지도 모르지만 세련되지 않은 집들이 오히려 섬과는 어울렸다. 

只心, 다만 마음만 갈 수 있다는 뜻이었을까. 그렇지만 일제강점기에만 주민들이 살지 못했지 조선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전하니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육지에서 짧은 거리에 있어 마음이 그리로 늘 향한다는 뜻일까. 이 풀이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고 내가 억지로 끌어다 붙인 것 같다.

只心島, 본래의 뜻이야 어떻게 붙여졌던 간에 나는 이렇게 정리를 해봤다. 지심도는 단지 마음만 가지고 가는 섬. 세상일도 짐도 모두 벗어놓고 마음만 가지고 섬으로 가자. 자연이 아직 그대로 간직돼 있는 섬은 안락한 쉼이 있어 삶의 여유를 갖게 하는 곳이다. 허스키한 소리에서부터 영롱한 소리까지 온갖 새들의 연주로 마음의 풍요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컴퓨터를 닫으며 몇몇 장면들이 스쳐서 섬이 걱정스러웠다. 선착장에 들어서고 있는 세련된 2층 건물과 내려오는 길에 보았던 시멘트 포대와 다른 건축자재를 부려놓은 것들 때문이다.

섬이 점점 가꿔져 천혜의 자연이 인공으로 대치되고 다음에 다시 찾았을 때는 크게 실망하지 않을까. 다시는 흙길을 걷지 못하고 시멘트로 포장된 매끈한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자동차가 돌아다니게 하지는 않을까. 팔색조가 더 이상 머물지 않은 것처럼 동박새나 직박구리의 노래도 듣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단지 마음에만 있는 섬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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