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배 전 거제군수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강둑을 가진 고을에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폭우경보가 발령되고 엄청난 비가 내려 홍수로 강물이 넘칠 지경에 이르렀다. 직원들을 대동하고 강변 마을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아무도 대피하려 하지 않고 그저 마루에 앉아 불어나는 강물만 태평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곳 출신 직원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답인즉 가관이었다. 그곳은 비만 오면 물바다가 되곤 하였으나 정부가 둑을 쌓아준 이후로는 강물이 불어나면 그저 쳐다보다가 수위가 높아져서 마당이 물에 잠기면 요강을 축담(댓돌의 사투리)에 올려놓고 물이 좀 더 불어 오르면 요강을 청(마루의 사투리)에 올려놓고 물이 빠지도록 방안에서 기다린다고 한다. 물론 강물의 흐름이 완만한 곳이기는 하지만….

공무원들조차 방관만 하고있을 뿐,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하는 사람은 외지에서 온 군수뿐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재난에 대한 안전불감증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마 그들은 새로 생긴 강둑을 과신하는 데서 생긴 버릇일 것이다. 그러나 그곳도 금년 폭우에는 많은 피해가 있었다는 뉴스를 듣고는 마음이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자연재해는 90% 이상이 태풍과 홍수라고 한다. 해마다 수해로 많은 인명피해는 물론 평균 1조7천억원의 재산손실을 입으며 이를 복구하는데는 2조6천억원이 든다고 한다. 결코 방관만 하고있을 처지가 아닌 것이다.

수해를 비롯하여 재난이 있을 때마다 기상청의 예보가 맞지 않았다, 공무원의 주민 대피가 적시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난에 따른 주민 행동요령 등 대처방법을 알리는데 TV나 라디오가 능동적이지 못했다는 등 비판이 빗발친다.

옳은 말들이다. 재난을 당했을 때에는 범국민적 대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주민들의 재난대처에 대한 불감증에는 대체로 관대한 편이다.

올해 7월에 있었던 우리나라 중부지역과 강원도 지역의 비 피해도 매우 극심한 편이었다. 그것도 채 복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피해가 겹쳤으니 말이다.

하루의 강우량이 3백-4백㎜가 넘었다니 양동이로 쏟아 붓는 것과 같은 폭우였으리라. 그런데도 일부 지역에서는 우리의 안전불감증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 한다.

경찰이 운전자들에게 도로가 막혔다고 알려주었는데도 그대로 나아가 이틀을 도로상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빗속에 갇힌 사람도 있었고, 한국도로공사 직원이 U턴을 권해도 도로공사 직원이 왜 통제를 하느냐며 경찰을 불러오라고 하고는 정작 경찰의 지시도 무시하는 일부 운전자들 때문에 영동고속도로가 마비되는데 한몫 했다고도 한다.

평택호에서는 40대 남자가 에위니아 태풍이 기승을 부리는데도 윈드서핑을 즐기다가 바람에 표류되어 119 구조대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되는가 하면, 서울 양평동에서는 안양천 둑이 무너져 일대가 물에 잠기고 구청에서 주민 2만여명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주민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하며, 영월 지역에서는 동강과 서강의 수위가 순식간에 차 올라 저지대에 사는 주민 6천여명에게 대피령이 떨어졌으나 상당수 주민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던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우리가 재난에 대하여 얼마나 심한 안전불감증에 걸려있는가를 웅변으로 말해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어려서부터 지진이나 재해에 대한 교육을 꾸준히 받아오기 때문에 재난현장을 보면 우선 피하고 본다고 한다.

재난은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즉 재난에 대한 국민의 불감증은 재난 그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으로서 더 큰 재난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는 기준의 하나로 ‘사전 예방을 중시하느냐 사후대책에 급급해 하느냐’에 따라 선·후진국을 나누기도 한다고 한다.

각종 재난을 입을 때마다 정부나 관련기관만을 탓하면서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국민 스스로가 재난의 예방에 대하여 철저하다면 정치인도 정부도 국민의 한 표에 아쉬운 그들이 지금처럼 예방정책에 이렇게 둔감할 수 있겠는가. 정책이나 예산 배정의 우선순위에서 눈을 돌릴 수 있겠는가.

이번의 폭우로 재난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길은 오직 국민들이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교훈을 깊이 명심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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