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남과 북 사이에 미사일을 두고 벌어진 공중전이 점입가경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고도의 공중심리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북이 저지른 미사일 발사에 대해 오랜만에 여야가 공히 같은 목소리로 규탄의 변을 쏟아내고 있지만 더 이상 진도를 빼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가 어렵게 꺼내든 개성공단 철수 결정에 대한 여론도 무조건 호의적이지만은 않을뿐더러 한미일 공조라는 기본적인 한계 속에서 구사할 수 있는 기술도 능력도 딱히 더 보여줄 게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이런 한계상황과 불확실성 때문인지 설 명절 동안 친지나 동창들을 만나보니 자식을 군대 보낸 사람들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는 듯 했다.
총선 분위기까지 겹쳐 어수선한 가운데 얼마 전 지나간 기사 중에 나오는 흥미로운 사진을 보게 됐다. 남부내륙철도를 놓아달라는 서부경남 지자체장들의 결의에 찬 모습이었는데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단체장들의 모습이 평소 보기 힘든 광경이라 그랬는지 재미있기까지 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김천-진주-거제를 잇는 남부내륙철도사업이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에 신규 사업으로 반영됐다고 한다. 반영 안 된 것보다는 당연히 다행스런 결정이지만 앞으로 극복해야 할 난관도 많을 것이라 예견된다.
다만 전국적으로 6대 낙후지역으로 분류되는 서부경남이 국가 균형발전과 철도기간망 사업에 필수적인 사업이라는 점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해 줬다는 데 의미가 작지 않다는 평가다.
아울러 박근혜대통령의 공약사업 이행이라는 부분도 주목해야 한다. MB정부 때 가장 큰 공약이었던 4대강 사업에 떠밀려 목소리 한 번 내어 보지 못하고 표류했던 남부내륙철도 사업이기 때문이다.
김천부터 거제까지 181.6㎞의 거리를 4조7440억원을 들여야 하는 큰 사업이기에 금방 가능한 일도 아니고 원만히 진행된다 해도 10년쯤 보고 가야 마음이 편해질 사업이다. 하지만 조선업이 부진한 우리지역의 경우 관광산업의 기반을 하루 속히 보강해야 된다고 보면 마냥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
이 사업은 사실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약인 김천-삼천포 노선인 이른바 '김삼선'이 모태가 되는 50년 거슬러 뿌리가 있는 사업이다. 기공식까지 가졌던 '김삼선'은 이후 경제 논리를 앞세운 수익성 부족사업으로 내내 외면돼 왔던 것이다.
철도와 관련한 역사를 뒤져보면, 개화기에 이미 경부철도를 놓을 계획을 세워 국민들을 상대로 이 새로운 제도와 방식에 대해 설득을 해 나갔던 기록이 있다. 그 때는 유생들을 중심으로 철도사업에 대한 거부감이 조성돼 있었던 모양이다.
해서 정부에서는 '철도 선무학사'라는 이들을 훈련시켜 유생을 설득하고 국민을 계몽하는 일들을 맡겨 추진했던 모양인데 그들과 유생 사이의 대화를 보면 당시 철도에 대한 정부와 유생 사이의 현격한 인식차이가 느껴진다.
유생이 "철도란 도대체 무슨 소용이오?"라고 묻자 선무학사가 "새벽에 부산진을 떠나면 저녁 무렵에 한성에 이르니 행려에 그 아니 편리하지 않습니까"라고 답한다. 그러자 다시 유생이 "그러니까 비장방(費張房)이 도술을 쓴단 말이지요. 이 어찌 치인지몽(痴人之夢)이 아니리오"라며 중국 후한 때 천지를 구름을 타고 날아다녔다는 비장방을 빗대어 어리석은 사람들의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해 버린다.
선무학사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도리어 치인지몽이 아니리오"라며 꽉 막혀 세상물정 모르는 협상파트너를 한심해 하며 박차고 일어나니 예나 지금이나 민관이 이런 일에 흔쾌히 뜻을 같이 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1992년 경부고속철도 기공식이 있은 후 2004년 서울-동대구 1단계 구간이 개통될 때까지 거의 20년 세월이 소요됐다. 그 때도 반대 의견이 없었던 게 아니다. 환경문제나 보상문제는 어쩌면 단순한 사안이다.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의 실패'를 들어가며 시간을 접어 첩경만을 찾는 인간의 미래는 불행해 질 것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접근들은 행정이 대처하기에 더욱 버거운 영역이었을 것이다.
전국이 '1일 생활권'이 된지 오래됐다. 곧 '반나절 생활권'이 목전에 있는데 지역의 산업구조상 남부내륙철도의 개통은 시급한 사안임이 분명하다.
시간이 빨라지면 생활이 각박해지고 체감수명은 오히려 줄어든다는 의견들도 있다. 또 우리라도 느리게 사는 곳으로 남겨둬야 미래에 더 각광받는 곳이 될 수 있다는 논리도 존재한다. 하지만 섬은 기본적으로 고립된 곳이다. 많은 길을 열어 두고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각자가 선택할 몫이다. '치인지몽'은 빠르게와 느리게 사이가 아닌 '모르게' 혹은 '모른체'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