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복면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얼굴 전체 또는 일부를 가리는 행위나 거기에 쓰이는 물건을 뜻한다.

지난해 노동계와 정계의 빅이슈가 됐던 복면시위와 복면금지법의 입법시도를 기억할 것이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복면을 쓰는 것을 이슬람국가 IS에 비유하며 비겁하고 저열한 시위형태라며 이례적인 비난을 했었다.

복면이 가지는 익명성이 시위의 참여율이나 과격함의 정도를 훨씬 높인다고 판단한 데서 나온 반응일 것이다. 복면을 쓴 채 하는 시위가 더 불법적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복면의 익명성이 주는 여러 가지 효과는 쉽게 인정이 된다. 나를 숨긴다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은폐의 목적이 뚜렷해 보인다. 그래서 복면은 대부분 범죄에 이용되며 자연스레 복면이 가지는 이미지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사극에 등장하는 복면 쓴 무리들은 거의가 암살자로 등장하고 은행이나 주택에 침입하여 금품을 뺏거나 인명을 해치는 강도에게도 복면은 필수적이다. 복면의 부정적 사용이 일반화되다 보니 심지어 은행의 현금인출기나 창구 이용 시 복면에 준하는 마스크나 짙은 선글라스의 사용을 금해 달라는 권고문구가 나붙기까지 했다.  

그런데 요즘 모 방송국에서 일요일마다 방영하는 '복면가왕'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복면의 부정적 이미지 뒤에 살짝 붙어 다니는 복면 주인공에 대한 호기심을 교묘히 프로그램에 녹여낸 것이다.

매주 새롭게 노래하는 이들이 출연해서 복면을 한 채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자를 가리는데, 노래의 주인공을 모른 채 각자가 가진 정보를 총동원해 복면 뒤 얼굴의 주인공을 추측해 가는 방식도 흥미로울 뿐 아니라 출연자들의 신분이 무척 다양해서 개그맨이 가수를 탈락시는가 하면 철썩같이 믿었던 주인공의 정체가 복면을 벗을 때 전혀 다른 반전은 모두에게 대단한 흥미를 준다.

맞추면 맞추는 대로 틀리면 틀리는 대로 그 나름에 주어지는 쾌감이 있다. 그래서 '복면가왕'은 복면의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한 채 많은 사연들을 품고 달려가고 있다.

복면과 비슷한 말로 '가면'이 있다. 가면은 얼굴을 감추거나 달리 꾸미기 위해 각종 재료로 만들어 얼굴에 쓰는 물건을 가리킨다. 혹은 속뜻은 감추고 겉으로 거짓을 꾸미는 의뭉스러운 얼굴을 나타내는 어휘이기도 하다.

이런 가면으로 세계 최대의 축제를 하는 곳이 있다. 이탈리아 최대의 축제이자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축제로 손꼽이는 '베니스 카니발'이 바로 그것인데 매년 1월말부터 2월초에 걸쳐 펼쳐진다.  

베니스 카니발은 1162년 베네치아 공화국이 아퀼레이아 대주교를 물리치고 승리한 기념으로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후 사순절을 앞둔 그리스도인들이 전날까지 풍족하게 먹으며 연회·서커스·거리축제·가면무도회 등을 즐기던 풍습이 오늘날의 축제로 발전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장인들의 화려한 솜씨를 볼 수 있는 '가면 경연대회'는 베니스 카니발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라고 한다. 카니발 기간에는 전 세계에서 30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몰린다고 하니 크지도 않은 베니스가 가면 쓴 관광객들로 그야말로 터져 나가지 않을까 싶다.

가면을 쓰고 노래대결을 하는 콘셉트는 사실 오래 전부터 있어오던 것이다. 이런 배틀을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극적으로 풀어낸 영화가 있는데, 벨기에 출신의 명장 제라드 코르비오 감독의 1988년작 '가면 속의 아리아'다.

원제목은 '음악선생님'인데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비롯해 무려 18개의 크고 작은 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되며 호평받았던 작품이다. 물론 지금도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고전으로 회자되고 있다.

세계적인 바리톤 호세 반담이 주연을 맡아 더욱 화제가 됐던 이 영화에는 주옥같은 가곡과 아리아가 그림처럼 흐른다. 그 간단한 슈베르트의 가곡 '음악에'조차 숨을 멈춘 듯 긴 호흡으로 영혼에 접속하고 만다.

마지막 조아킴의 장례식 장면에 흐르는 말러의 가곡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에서는 현실계를 떠나 천상계를 관객이 함께 체험하는 듯하다. 가면을 쓰고 노래한다는 것에 열광하는 것은 편견 없이 바라보자는 함의가 숨어 있다.

그래서 가면을 벗어 던진 이들이 과거에 실수를 했거나 실패를 했던 사람이라면 이 가면이 더 없이 안온하고 새로운 기회가 돼 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말에 공감하며 감정이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가면을 써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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