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전체적인 경기침체로 공연계도 좀체 활기를 찾기가 쉽지 않은 가운데 작년 준비 단계부터 기대와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 있다. 뮤지컬 '마타하리'가 그 주인공인데,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의 한 재즈바에서 열린 쇼케이스는 이런 기대에 부응했다는 전언이다.

이날 쇼케이스에는 연출가 제프 칼훈랜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음악감독 김문정을 비롯해 배우들과 앙상블들이 모두 참석해 흥행을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고 한다. 김소향과 함께 마타하리 역으로 더블 캐스팅된 옥주현이 부른 '예전의 그 소녀(The girl used to be)'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대상이 되고 있다.

마타하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작품이 수입품이 아닌 국산품이란 것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250억원의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됐을 뿐만 아니라 브로드웨이의 스타 프로덕션팀이 결합해 글로벌한 모양을 갖추다 보니 뮤지컬계의 어벤져스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과거엔 명성황후같은 우리 소재 일색의 창작이 주를 이루었다면 마타하리는 세계 시장을 겨냥한 국제용으로 소재가 선정된 점도 이채롭다.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한국에서 생산해 낸다는 것이 예전 같으면 꿈이나마 꿀 수 있었을까. 한국의 뮤지컬계가 그 동안 많은 사랑을 받으며 쌓아온 힘을 이제 세계시장에 내어 놓을 수 있는 위치에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1917년 10월15일 아침. 파리 교외에서는 마흔을 갓 넘긴 한 여인이 스파이 혐의로 총살됐다. 형 집행 직전 씌워지는 눈가리개도 거부한 채 그녀는 12명의 사수 앞에서 입고 있던 외투마저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섰다. 그녀가 바로 물랑루즈를 주무대로 파리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치명적 매력의 여인 마타하리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이중스파이 혐의로 프랑스 당국에 체포되어 총살당한 그녀의 본명은 마가레타 거트루드 젤르(Margaretha Geertruida Zelle)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팜므파탈적 매력을 가진 여인들은 거짓말에 능하다. 각종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하고 남자를 유혹하고 권력에 접근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그녀의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의 이야기는 분명한 게 별로 없다. 사실 실제 스파이였는지 아닌지조차도 설이 분분하다. 그러다 보니 예술작품의 소재로 많이 활용돼 왔다. 마타하리는 인도네시아 말로 '여명의 눈동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1932년 당대 최고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에 의해 그려진 드라마틱한 마타하리의 삶은 이후 팜므파탈의 최고봉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이후 실비아 크리스텔에 의해 다시 그려지기도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MBC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채옥'이란 인물로 변용되기도 했다.

이번 작품은 파리 물랑루즈에서 가장 유명한 무희였던 마타하리가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라두 대령에 의해 프랑스의 스파이로 활동하게 되는데 그녀의 유일하고 진실한 사랑인 프랑스군의 사진사인 아르망이 위험지역인 독일의 비텔(Vittel)로 파견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후 적진에서 행방불명 된 아르망을 찾기 위해 독일로 가게 된 마타하리는 이중 스파이라는 혐의를 받는데, 위협을 무릅쓰고 순수한 사랑을 쫓는 마타하리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황홀하게 눈부신 물랑루즈와 전쟁터를 무대로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면서 뮤지컬로서의 완성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누구에게나 내면 깊숙한 어딘가에 감춰둔 진실한 사랑은 존재한다는 정의를 기반으로 한, 어쩌면 정서적으로는 지극히 한국적인 해석이 가미된 작품이 아닐까 여겨진다.

어차피 해외시장을 겨냥한 수출용이라면 작품성도 중요하지만 간결한 언어로 국경과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는 세련된 기술이 잘 구사돼야 할 것이라 여겨진다. 사랑도 사랑이지만 '이중스파이'라는 소재도 다소 진부해 보이긴 하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매력적이면서도 풀어지지 않는, 그래서 항상 환영받는 코드다.

뜬금없는 얘기지만, 선거철이 되면 날아오는 각종 출판기념회나 선거사무소 개소식 같은 인사장도 자칫 일정이나 상황이 꼬이면 꼭 '이중스파이' 놀이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3월 29일부터 대장정에 돌입하는 마타하리에 일단 애정의 박수를 보내 본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 마타하리의 실제적 사랑을 확인하고 격려해 주고 싶다.

'사랑'과 '이중적'이라는 어휘가 주는 달콤함과 짓누름을 우리는 살면서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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