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최근 치러진 대만의 총통선거에서 여성후보인 민진당 차잉인원(蔡英文)이 당선돼 8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현 집권당인 국민당은 1949년부터 2000년까지 이어진 장기집권 기간동안 일본이 남겨 놓고 간 잔재재산과 독재를 통해 불법적으로 축재한 재산을 많이 모아 놓았다고 한다.

천수이벤이 잠깐 국민당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왔을 때 개혁을 해보려 했지만 개인적인 부패 스캔들을 극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의회도 장악하지 못해 국민적 기대를 저버린 적이 있다. 그래선지 차잉인원 당선자는 의회 과반의석까지 차지한 여세를 몰아 대만판 '역사 바로세우기'를 통해 국민당의 재산을 국유화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대만 정국이 앞으로 파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이번 총통선거에 우리나라 신인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周子瑜·17)가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가 양안(중국과 대만) 사이의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며 선거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잘 알다시피,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국과 독립을 주장하는 대만의 입장 차는 오랜 시간 동안 양 국가 간의 문제를 넘어 국제사회에서도 민감한 이슈로 작용해 왔다. 대만 국민들의 70% 이상은 지금도 중국과의 통일보다는 독립을 더 원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요즘 한류를 주도하는 아이돌그룹은 아시아 각국의 재능있는 젊은이들을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 상품화 과정을 거치는 게 추센데 이들의 궁극적인 시장은 당연히 빅마켓인 중국일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중국진출을 꿈꾸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중국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대만국기를 흔들고 방송에 나왔고 이를 대만 출신 중국작곡가 황안이라는 사람이 쯔이가 대만 독립론자라고 몰아 부치면서 소속사에선 중국을 의식해 쯔위로 하여금 "나는 자랑스런 중국인이다"라고 말하게 하는 영상을 내보내게 된 것이다.

이것이 여론의 관심을 받으며 때마침 대만 독립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는 민진당으로 표가 몰리게 되는 뜻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 대략적인 스토리인데, 국내외 동향을 보니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아직 어린 쯔이가 한 행동 자체엔 전혀 문제가 없고 이후 어른들이 이 사건을 각자의 입장대로 작위적으로 만들어나간데 대한 비난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쯔이 사태와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국기가 가지는 상징성이 아직 상당히 근대적인 아니 어쩌면 원시적인 정서상태로 남아 있다는데 깜짝 놀랐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가적인 경쟁이 이슈가 되는 시기가 되면 국기는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자신의 국기를 두르고 경기장을 돌면서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퍼포먼스는 이제 가장 흔한 광경이 됐다. 국가 구성원들이 아무 조건없이 공동체의식을 진하게 느끼는 그 순간, 국기는 늘 주인공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어릴 때 학교에서는 애국조례가 있었다. 운동장에서 정기적으로 국기를 대하며 애국심을 충전하던 시기였다. 거리에서는 일몰시 행해지던 '국기강하식'이 있어 시간을 맞춰 들려오는 애국가 소리에 사람도 차도 모두 가던 길을 멈추고 주변에 있는 국기를 찾아 가슴에 손을 얹고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문득 통치자 입장에선 국기가 통치수단으로 매우 유용한 것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기는 덴마크 국기라고 알려져 있다. '덴마크의 힘'이라는 의미의 '단네브로그(Dannebrog)'는 에스토니아 원정 중 고전을 겪고 있을 때, 하늘에서 붉은 바탕의 하얀 십자가 모양의 깃발이 내려와 승리할 수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깃발은 로마의 교황이 십자군에게 준 선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국기 중앙의 십자가 무늬는 기독교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덴마크 주변 북유럽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쓰고 있는 패턴이며 자기정체성이다.

1875년에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에 일방적으로 정박하며 우리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을 요구한데 대해 우리 수비대가 대포를 쏘아 일본 국기를 태워버렸는데 일본은 인명 피해보다 국기 훼손을 트집삼아 우리를 압박해 왔고 결국 이듬해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을 맺게 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태극기는 이 사건으로 인한 국기의 필요성에 의해 탄생했다는 설이 있다. 국기가 단순히 깃발이 아닌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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