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영국이 중국과 통상을 하기 시작한 시점은 명대(明代) 시기인 1637년부터이다. 하지만 이 거래는 2세기에 걸친 1820년대까지 일방적인 영국의 무역적자로 이어졌다.

당시 유럽 상류사회는 중국 차나 도자기·비단같은 상품에 대한 인기가 절대적이어서 도무지 무역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없었다. 마침 인도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은 광대한 영토와 노동력을 활용해 양귀비를 재배하기로 하고 양귀비로부터 추출된 이른바 '아편'의 공급처로 중국을 선택했다. 

중국인들에게 아편은 꽤 오랫동안 기호품이나 치료제로 쓰여오던 터라 전혀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영국의 중국시장 공략은 비교적 쉽게 진행됐고 200년 무역적자를 일거에 흑자로 전환시키고 마는 효자상품이 돼버린 것이다.

이렇게 아편의 물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자 아편보관을 위한 일종의 물류지가 필요했고 수심이 깊어 선박 접안이 용이한 홍콩이 주목받게 됐다.

아편의 대량 유입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아편중독에 내몰리고 화폐의 기본단위인 은의 유출로 인해 심각한 경기침체와 국가재정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 중국은 아편에 대한 배타적인 정책을 연이어 내 놓았고 급기야 영국 상인들의 아편 2만 상자를 몰수해 소각해 버리고 만다.

이에 1840년 영국은 군함 40여척에 1만여명의 군인을 동원해 중국을 공격했고 결과는 양국이 모두 깜짝 놀랄만큼 영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고 만다. 역사상 가장 부도덕하다는 '아편전쟁'은 '난징조약'의 체결로 종결되는데 이 조약은 불평등조약의 대표적 사례로 역사교과서에 언급되고 있다.

바로 이 난징조약의 내용에 홍콩을 영국에 넘겨주겠다는 할양조항이 담겨 있는데 이로 인해 지금의 홍콩이 탄생한 것이다. 홍콩은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써 상당기간 아편중계지 역할을 했을뿐만 아니라 1949년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로 진입하면서부터는 서방세계와의 유일한 통로가 되면서 독자적인 신흥경제 중심지가 됐다.

중국인들에게는 기회의 땅으로, 다른 이들에겐 꽉 닫힌 중국을 그나마 맛볼 수 있는 쇼윈도로서 독특한 소통의 중심이 돼 오늘의 홍콩은 그렇게 성장해 왔다.  홍콩은 지리적으로 멀지 않고 이국적인 요소들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쇼핑의 천국이라는 이미지까지 더해져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장 인기 여행지이다.

특히 요즘처럼 방학을 맞아 좋은 기후조건과 맞물릴 때면 여행자의 수는 급증한다. 홍콩의 거리 곳곳에는 한국말이 현지 언어처럼 익숙하게 들리고 손에 각종 가이드북을 쥐어든 채 맛집을 순례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홍콩의 가치를 쇼핑과 먹거리·야경 정도만으로 가볍게 측정해선 안 될 시점에 도달해 있다. 다문화 사회의 가장 큰 장점은 유연성과 포용성이다. 더구나 짧은 시간에 수많은 어려움을 감내하며 쌓은 내공은 홍콩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조정과 수용이라는 현대사회의 가장 큰 덕목이 일상화되어 있는, 다문화 국제금융도시 홍콩이 이제 이 힘을 바탕으로 '문화'로 눈을 돌리고 있다.

단순히 공간만 보더라도 홍콩섬 쪽에는 '홍콩아트센터'가 있고 침사추이 스타의 거리엔 '홍콩문화센터'가 있는데 건설 중이거나 예정된 곳도 꽤 많다. '홍콩아트페스티벌'은 이렇게 산재해 있는 문화공간을 중심으로 올해 44회째를 맞는 아시아 공연예술축제의 맏형으로 성장했다.

홍콩아트페스티벌은 국가별, 장르별 교류의 중심지이다. 어쩌면 홍콩만큼 이 역할을 잘해줄 곳을 찾기는 애초에 쉽지 않았을 수 있다. 런던과 베니스처럼 경계와 융합의 역할을 자임하며 '문화'가 미래의 성장동력이라는 걸 일찌감치 알아차린 듯하다.

우리가 "술 한 잔 하자"고 하듯이 홍콩 사람들은 "얌차(飮茶) 한번 같이 하자"고 한다. 그만큼 차를 즐긴다는 방증이다. 오후에 즐기는 느긋하고 우아한 차 차림으로 '에프터눈 티'라는 게 있는데 호텔이나 고급 찻집에서는 차별화된 메뉴를 내어 놓고 고객을 유인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차'와 관련한 매장도 세계 각국에서 진출해 있을 수밖에  없다.

요즘 인기 있는 차는 오리지널보다 향을 더한 가향 제품이 인기라 한다. 차도 융합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별들이 소근 대던 홍콩의 밤거리는 이제 단순한 소비문화를 넘어 본토의 중원문화를 압도하는 총체적 다원문화로 나아가고 있다. 아시안 월드시티 홍콩의 다음 종착역은 이리가나 저리가나  '문화'임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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