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새해가 밝았다. 다행이 날씨가 쾌청해 일출을 보기엔 더없이 좋았다. 한 가지 더 행운이 있다면 바닷가에 집을 두고 있어 굳이 해돋이 행사장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순간 아내는 새해 첫 끼니를 무엇으로 할지 잠시 고민하다 멸치국물을 우려내고 있다. 지극히 어제나 그제처럼 평범한 일상이다.

병신년(丙申年) 새해는 붉은 원숭이 해라고 한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다며 어릴 때 끝말잇기 하듯 불렀던 노래가 있어서인지 원숭이와 붉은색은 매칭이 잘된다. 각종 매체에는 붉은 색이 액을 물리쳐주는 색이기 때문에 우리사회가 당면한 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하게 될 거라는 희망에 찬 메시지로 가득하다.

신년엔 원래 이렇게 좋은 얘기들을 나누며 사회 전체가 주술을 거는 시기다. 근데 가만 생각해 보면 원숭이가 우리에게 그렇게 긍정적인 캐릭터이기만 했는지 의문이 든다. 약삭빠르고 깊이 신뢰하기 힘든 이미지로 새겨져 있는 게 더 현실적인 평가가 아닐까 싶다.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조차도,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며 재주가 출중한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왠지 '요령꾼' 쯤으로 인식돼 있다. 

특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 때는 흔히 협상이란 걸 필연적으로 해야 하는데 원숭이의 협상방식과 관련한 '조삼모사(朝三暮四)'는 눈앞의 이익만 쫓는 어리석음에 빗대어 많이 비유된다.

'장자'의 제물론 13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원숭이를 키우는 한 사나이는 아침에 도토리 3개를 주고 저녁에 도토리 4개를 주려하는데 원숭이는 반대로 아침에 4개를 먹고 저녁에 남은 3개를 먹겠다는, 다시 말해서 '조사모삼(朝四暮三)'하겠다는 대립을 다룬 이야기다.

대개 우리는 이 정도로 알고 어차피 아침에 조금 양보하면 결국 저녁에 더 많이 먹을 수 있는데 당장 아침에 많이 먹겠다는 원숭이의 근시안적 판단을 한심하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일들이, 특히 상대가 있는 일이라면 더더욱 이 조삼모사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본질은 어쩌면 한정된 자원이 핵심인지 모른다. 도토리가 꼭 7개가 아니라 8개나 10개도 될 수 있다면 훨씬 많은 가능성을 열어 놓고 갈등의 요인을 줄여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선거구 획정' 문제나 한일간의 '위안부 해결' 문제같은 국가적 중대 사안들도 엄밀히 보면 도토리 하나라도 더 쓸 수 있는 총량에서의 여유만 주어진다면 쉽게 풀어질 수 있는 문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또 한걸음 더 들어가 보면, 원숭이가 아침에 도토리 4개를 원한 마음을 헤아려 본다면, 예컨대 원숭이는 아침과 저녁 사이가 조금 허해서 아침에 받은 4개 중 하나는 남겼다가 점심에 먹을 요량이었으며 또 점심에 먹을 도토리 1개를 사나이에게 따로 요구해 번거롭게 하는 것보다 자신이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깊은 뜻이 있었다면, 사나이는 어차피 7개의 도토리를 원숭이가 훨씬 더 만족해하는 방법으로 지급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만약 7개의 도토리 중 4개를 옆집에 빌려주고 오후에 받기로 했는데 사정도 헤아리지 않고 무조건 아침에 4개를 내어 놓으라고 떼를 쓴다면 원숭이가 얼마나 원망스럽고 얄미울까.

신년부터 말장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엔 이런 부분들이 늘 상존한다. 그래서인지 '장자'에는 "명실미휴(名實未虧)나 而喜怒爲用(이희노위용)이니 亦因是也(역인시야)라"고 부연하고 있다. 풀어보면, "명분과 실익이 변하지 않았는데도 기쁘거나 슬퍼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의 시비하는 마음을 따르기 때문이라" 정도가 된다.

조삼모사(朝三暮四)가 조사모삼(朝四暮三)을 넘어 조칠모무(朝七暮無)가 될 수도 있다는 이해와 유연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올해도 '붉은 원숭이' 덕 보기는 요원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아침밥은 꼭 먹어야 하고 커피는 하루에 두 잔 이상 마시면 안 되며 조깅을 생활화하라 했는데, 며칠 전 발표에 의하면 아침은 안 먹는 게 더 좋고 커피도 굳이 제한하지 않아도 되며 조깅은 무리가 가니 빨리 걷기를 하란다.

그렇다. 세상엔 절대적으로 믿을 게 몇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신념이나 관념에 사로 잡혀 나를 잃고 주변과 반목하는 우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제일 큰 재앙인지도 모른 채.

2016년, 새해엔 원숭이 엉덩이가 새빨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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