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매년 연말이면 '교수신문'은 설문을 통해 한 해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올해도 몇 가지 후보군을 두고 투표를 진행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886명의 교수들이 절차를 밟아 내어놓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라고 한다.

낯설다 싶어 설명을 들어보니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에서 '혼용'을,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묘사한 천하무도(天下無道)에서 '무도'를 가져와 합한 것'이라는 해설이 나와 있다.

새로운 조합으로 탄생한 사자성어인 셈이다. 물론 무능한 군주로 인해 세상에 도가 서지 않고 혼탁하기 이를 데 없다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뉘앙스가 짙게 드러나는 사자성어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에서 우리 대학이 좌파 교수들로 물들어 있다고 개탄을 금치 못했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감히 청와대에 조언하자면, 나라를 운영하면서 학자들이 연말에 의례히 내어 놓는 어휘 하나에까지 일희일비 할 것까진 없다고 봐진다. 겸허하게 민심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백성의 마음을 얻을 궁리를 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권을 전복하려 하거나 터무니없이 흠집 내는 일에는 절대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경제적으로 어렵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위험수위를 넘어서다보니 지도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고 조금만 기대에서 벗어나도 실망하고 격하게 표현하게 되는 것인데, 원래  군주는 백성을 측은지심으로 봐야 한다니 포용해 수용하는 것이 늘 우선이다.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역사를 보면 서울시립교향악단이 70여년의 역사로 으뜸이고 뒤를 이어 KBS교향악단·부산시향·대구시향이 뒤따르고 있다. 실제 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국내음악 수준을 국제적으로 끌어 올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

정명훈의 서울시향 이전에는 KBS가 더 나은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 2012년 재단법인화 과정에서 내분이 일어나면서 조직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나락으로 떨어져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요엘 레비를 상임지휘자로 영입한 KBS는 신속히 전열을 가다듬어 옛 영화를 재현하고 있다.

최근 제700회 정기연주회는 마치 자신의 재탄생을 알리듯 말러의 '부활'을 연주해 전문가와 애호가 모두에게 확실히 달라진 KBS교향악단의 위상을 확인해 줬다.

대구는 음악만 놓고 보면 제2의 도시 부산을 능가한다. 하지만 대구시향도 매너리즘과 보수적인 운영으로 한동안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형편없는 연주로 명맥만 겨우 유지해 오고 있던 중, 줄리안 코바체프라는 지휘자를 영입하면서 환골탈태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불가리아 태생의 코바체프는 카라얀의 제자로 마에스트로의 계보를 잇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 5월 공연에서 연주하던 중 갑작스럽게 쓰러져 관객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고 6월에도 리허설 도중 다시 쓰러져 건강에 대해 우려를 낳기도 했지만, 9월 대구무대에 성공적으로 복귀하면서 '오뚝이 지휘자'라는 별칭이 붙었다.

KBS교향악단과 대구시향 모두 새로운 지휘자를 영입해 성공적인 항해를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흔히 오케스트라를 조직에 많이 비유한다. 서로 다른 기능과 역할을 가진 100여명의 단원들을 어떻게 잘 조화시키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불협화음으로 듣기 거북한 소리를 내기도 하니 지휘자의 역할이 그만큼 막중한 것이다.

공연이 연속 매진되고 단원들도 지휘자의 음악적 권위를 인정하게 되니 당연히 예비와 코바체프 두 지휘자 모두 재계약에 성공해 이번에 연임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율곡 이이는 "혼군은 정치를 잘하려는 뜻은 있지만 총명하지 못해 현명한 자 대신 간사·무능하거나 신뢰할 수 없는 자들을 기용해서 패망하는 군주"라고 했으며 마지막 "용군은 나약하고 과단성이 없어 구태만 되풀이 하다가 나라를 망치는 지도자"라고 율곡전서에 기술하고 있다.

중국 요임금 때, 쉰 살쯤 된 사람이 길에서 땅을 두드리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를 본 어떤 이가 "위대하도다. 요 임금의 덕이요"라고 운을 떼자 노래를 부르던 이가 "나는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쉬면서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서 밥을 먹을 뿐이요. 임금이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랴"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바로 정치의 지향점이 돼야 할 요순시대를 대변하는 '격앙가'를 일컫는 일화이다.

새해에 우리는 태평성대를 기다리며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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