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사회의 신뢰 수준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4.9%)이 자녀들에게 모르는 사람은 일단 의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거나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지역사람(16.8%)과 이웃집 사람(19.5%)·고향사람(23.6%)·동문(24.9%) 등과 같은 지연·학연에 대한 신뢰도도 상당히 낮게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친척들을 신뢰한다는 응답(38.7%)이 높은 편이었으나 이 역시 절반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직장생활도 불신으로 가득 차 보인다. 회사 동료들을 신뢰한다는 의견은 37.1%였고 선배(29.8%)와 상사(27.4%)에 대한 신뢰도 우리가 직장에 머무는 시간이나 가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아 보인다. 

삶의 기본단위와 관련한 인간관계의 신뢰가 이렇게 무너져 있는데 한 다리 건너 있는 사람이나 집단·정부에 대한 신뢰는 오죽하겠는가. 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자는 8%에 불과했고 공공기관과 시민단체조차 10%대 초반의 신뢰도를 나타냈으니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엔 이들을 통틀어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의식이 깔려 있는 듯하다. 직업군으로 보면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가 2.8%로 거의 바닥권을 형성했고 교사·의사가 30% 초반, 교수·법률가 같은 전문직들은 20% 미만의 결과를 나타냈다.

여기서 주목해 볼 부분은 전문가 집단에 대한 불신이다. 현대사회는 각 부분별 특징과 테크놀리지의 결합과정에 의해 형성되고 발전된다고 한다. 그래서 융복합의 바람이 학문의 영역을 넘어 경계를 가릴 것 없이 최고의 미덕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현대사회의 특징을 인정하고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선 '전문가에 대한 존중'이 선행돼야 한다.

우리는 자칫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방대한 양의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일상 속에서 인스턴트식으로 섭취돼는 정보가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진 모르겠지만 한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동력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요즘 흔히 말하는 사회적 합의 과정의 형식인 '집단지성'과는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전문가에 대한 불신은 우리 미래에 대한 대단한 경고이다. 법률가가 약한 자를 외면하고 강한자의 불의에 영합하거나 예술가가 별스럽지 않은 것을 대단한 것인 양 현혹하는 사기꾼과 비슷하게 취급당하거나 연구원이 성과에 대한 집념보다 연구의 과정에서 생기는 물욕에 쉽게 노출된다거나 하는 유형들은 어쩌면 일반화되어 전문가에 대한 불신을 고착화시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에겐 이런 일반적인 인식도 문제지만 전문가를 다루는 방법에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지난해 10월 정 모 관장 직위 해제 이후 무려 1년 2개월간 공석이었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자리에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전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장이 임명됐다. 그런데 이 인사와 관련해 국내 미술인 77인이 반대 성명을 내어 파장이 일고 있다. 2000년 개방형 직위공모제 도입 이후 정부 부처에 외국인이 임명된 건 처음이라 한다.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던 이참씨는 귀화를 했었기 때문에 우리 국적자였다. 미술인들의 성명 내용을 여기서 열거 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요구 내용이나 방식, 방향성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사회가 전문가를 다루는 방식의 미숙함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전문가 영역에서의 국수주의나 행정편의주의는 시급히 작별을 고해야할 과거의 유산이다. 25년 전, 정명훈이 프랑스 바스티유 국립오페라단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됐을 때 우리가 얼마나 열광했던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당시로선 정말 존재감 없는 동양의 작은 나라의 음악가를 본질 그대로만 보고 뽑아 쓰는 그들의 의식과 양식을 배웠어야 했다. 아전인수식의 열광이 우리를 바꾸게 한 건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광주비엔날레엔 스톡홀롬에서 온 마리아 린드 총감독이 있다. 통영국제음악제엔 뮌헨에서 온 플로리안 림 대표가 있다. 그들이 미술계의 또는 음악계의 히딩크가 될지 슈틸리케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문을 걸어 잠그고 간혹 우리 식구 개천에서 용나는 것만 가지고 난리 부릴 수 있는 세상이 이미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뢰가 왜 무너졌는지 제발 알았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