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와서 누울
슬픔이 와서 누울
  • 거제신문
  • 승인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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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윤수/ '문장21' 등단

나는 네가 필요하다
네가 나에게 줄 상처가 필요하다
상처 속에 들어 있는 말 거짓말 혹은
진실 끝에 매달린 작은 젖꼭지가 필요하다
상처에 상처를 비비고 문지르고 문질러
맑은 피가 흐를 때까지
달큼한 젖이 나올 때까지
나는 작은 아가미를 가진 물고기

너의 말들을 입속에 넣고 발라낼
가시 뼈가 필요하다
너의 아름다운 손가락이 필요하다
가시에서 발라낸 은색 비늘로
정교하고 촘촘하게 그물을 짜야 하니까
슬픔이 와서 누울 긴 해안선을 만들어야 하니까

오후에 내리게 될 먹구름 속의 비를 불러와 추억을 지운다
그 어디에도 있고 그 어디에도 없는
시작도 하기 전에 사랑은
그리고 이별은 예감처럼 왔다

·시 읽기: 시인의 처녀 시집 '기억 속 별을 찾아'(2015)에 실린 시이다. 시적 화자는 "나는 네가 필요하다/ 네가 나에게 줄 상처가 필요하다"라며 이미 화자 곁을 떠나 버린 2인칭 '네'가 다시 돌아오기를 염원하고 있다. 즉, 이별의 상처에 대해 독백적 진술을 하고 있다. "상처 속에 들어 있는 말"인 "거짓말 혹은/ 진실"의 "끝에 매달린 작은 젖꼭지가 필요하다"며 상처받은 자아의 상태를 진술하고 있다. "상처에 상처를 비비고 문지르고 문질러/ 맑은 피가 흐를 때까지/ 달큼한 젖이 나올 때까지/ 나는 작은 아가미를 가진 물고기"라며 치유되기까지의 삶의 여정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오후에 내리게 될 먹구름 속의 비를 불러와 추억을 지운다"라며 2인칭 '네'와의 추억을 지우고 싶어 한다. "그 어디에도 있고 그 어디에도 없는/ 시작도 하기 전에 사랑은/ 그리고 이별은 예감처럼 왔다"라며 '네'와의 이별의 슬픔이 화자에게 다가와서 누워 있음을 독백적 진술을 한다. 이처럼 상처받은 자의 슬픔을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문학평론가 신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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