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지난달 30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는 근래에 보기 드문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날 공연은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중 서울에서의 두 번 공연 중 하나였는데, 사실 악단의 지명도를 유독 따지는 국내 음악팬에게 시드니 심포니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협연자로 나서는 피아니스트 윤디 리를 보기 위해 많은 애호가들이 공연장을 찾았다.

윤디 리는 랑랑과 함께 클래식 신흥 강국 중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스타 연주자다. 한 조사에 의하면 작년 한 해 동안 연주로 벌어들인 수입이 한화 50억원이 넘어설 만큼 왕성한 연주활동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윤디는 2000년 폴란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8세로 최연소 우승하며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바 있다. 10년 전, 물이 한창 올라있던 윤디를 내가 관여하고 있던 음악축제에 초청한 적이 있는데, 수려한 외모까지 갖춘 터라 공연이 끝난 후 사인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섰던 관객들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재작년 북경을 방문했을 때 마침 윤디의 공연이 있어 티켓을 구입해 공연을 보러 갔는데 훨씬 성숙해진 윤디의 모습에 북경의 밤거리를 거닐며 여운을 즐겼던 기분 좋은 추억도 있다. 그래서 이번 공연이 어떠냐며 물어오는 주변의 지인들에게 흔쾌히 추천까지 하게 됐다. 그런데 먼 길을 한 차 가득 채우곤 일정이 맞지 않아 가지 못하는 나를 약올려가며 떠났던 일행들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쇼팽 스페셜리스트인 윤디가 공연을 망쳐 버린 것이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의 1악장 연주 초반 음을 틀리며 흔들리기 시작한 윤디가 중간부터는 완전히 오케스트라와 동떨어져 달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휘자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연주를 중단해 버리고 만 것이다.

청중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시작한 연주에서도 시종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겨우 연주를 마무리한 윤디는 최소한의 무대 매너도 갖추지 않은 채 오케스트라에게 문제가 있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고는 미리 약속돼 있던 사인회도 일방적으로 취소한 채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고 하는데, 문제는 이렇게 연주를 망친 윤디가 그날 밤 숙소에서 중국판 SNS인 웨이보에 '할로윈 인증샷'을 올려 한국 음악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각종 매체들은 관련 기사들을 쏟아 내고 있다. 얼마 전 21세의 나이로 제17회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군을 들먹여 가며 윤디가 조성진을 의식해서 페이스를 잃었다는 다소 허무맹랑한 기사까지 뜨고 있는 걸 보면 이번 일은 당분간 많은 파생 기사를 양산해 낼 것으로 보인다. 

이번 윤디 사태를 접하며 지난여름 우리 아들이 무대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아들은 계룡중학교 음악중점반을 졸업하고 수도권에 있는 K예고에 진학해 타악기를 공부하고 있다.

서울의 중견악단이 진주와 통영 공연을 진행하면서 서부경남 출신 타악기를 전공하는 고등학생을 협연자로 섭외하게 됐는데 우리집 애에게 연결이 된 것이다. 통영에서 초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악단이나 우리 애 모두 의미 있고 만족스런 연주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서울에서 두 번의 리허설을 가지고 진주에서 연주를 먼저 하게 됐는데 연주하는 애보다 아내와 내가 더 긴장했던 것 같다. 다행히 훌륭하게 연주를 마치고 기분 좋게 통영 공연을 맞이하게 됐는데, 통영 공연은 초등학교 친구들도 꽤 올 거 같다며 진주와는 사뭇 다르게 헤어스타일·신발·무대복장 등 이것저것 신경을 쓰며 부산을 떨었다.

그래서 집중력이 떨어졌을까? 아님 자기를 알아보고 소리 지르는 어릴 적 친구들에게 잘 해 보이려는 의욕이 너무 앞선 것이었을까? 아들은 연주 중간 페이스를 잃고 주로를 이탈하고 말았다. 오케스트라가 멈춘 후 나는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아들은 다시 시작한 연주를 편안하게 평상심을 찾고 잘 마쳤다. 5분 남짓한 연주 시간이 나에겐 억만 시간만큼 길고 힘들었지만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두 번째 시도마저 실패하면 우리 애는 영원히 무대에 서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어 필사적으로 기도를 하게 된 것이다.

아들은 학교로 돌아가며 공연포스터를 두고 갔다. 본인 스스로 실격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리곤 무대가 마냥 환상적인 공간이 아닌 최선을 다해 집중하지 않으면 얼마나 외롭고 두려운 공간인지 알게 됐다고 했다.

10년 전 천재가 영원할 수 없는 곳이 무대다. 연주자는 그래서 구도자와 비슷하다. 윤디를 보며 실패를 극복해준 아들이 자랑스럽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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