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 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어떤 병사의/ 여리고 오랜 바램이 / 계룡산 높은 골짜기 샘터가 / 산죽(山竹) 되어 / 사그락 사그락 / 속도 없이 늙었는가(중략) 옛 절터 / 높이 선 바위의 아득한 인내 끝에 / 서로 다른 이념과
서로 같은 소원이 / 총성과 함성으로 젖어들어 / 바위 혈관 속 끝나지 않는 폭동이여,
섬은 바위에 부러진 비명을 묻고 / 산은 바위를 포로처럼 품어왔네(중략) 

- 졸시 '산죽(山竹)'중에서

계룡산을 바라보면 아프다. 푸른 하늘에서 내려 닿는 시린 빛이 아니더라도 아파서 눈물이 난다. 오래 된 것들의 친숙함과 편안함을 느껴야 하는 어머니 품 속 같아야 할 계룡산에서 10월 끝자락 붉고 노랗게 물든 치열한 역사를 듣기 위해 산을 오른다.

벌써 굽어지고 깊숙한 골짜기에서부터 색색의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부지런하게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몇 계절 당당했던 푸르름은 언제라도 비켜 설 모양으로 자신을 버리기 시작한다.

버림으로서 자기를 지킬 줄 아는 나무들의 현명함에 가슴 따뜻해진다. 수십 년을 잎 피우고 버리고 견뎌서 만든 나이테는 단순한 수령 표식이 아니라, 그 산의, 그 나무의 인생일 것이리라. 버린다는 것이 참 아름답다 생각하면서 가까운 사람에게 서운한 마음 하나 버리지 못하는 협협한 나를 꾸짖어 본다. 산을 오를 때의 겸손해지는 마음은 흐르는 땀만큼이나 이익 되는 일이다.

곧고 순한 사람들만 모여 살았을 칠백리 섬의 고요를 일순간 무너뜨린 거함의 뱃고동 소리와 함성들이 계룡산 곳곳에 묻혀 있는 듯하다. 땅 속에서 70년이 되어 가도록 아직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하다. 중턱을 넘어서니 샘터가 있다.

그 옛날에도 샘터가 있었다면 나이 어린 병사들이 목을 축이고 쉬어 갔을 자리다. 산죽을 베어 피리를 만들었을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이념을 향한 예리한 도구가 됐을 수도 있다.

이유도 모른 체, 이 산 저 언덕에 산죽 되어 사라졌을 영혼을 불러 본다. 옛 절터를 둘러 싼 기둥 바위들의 당당한 자태는 해금강 거친 바람의 위엄을 풍긴다. 산 정상 모진 세월에 다듬어진 얼기설기 자리한 바위에서 폭동의 함성과 총성이 들린다.

철조망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 바위 혈관을 뚫고 나올 기세다. 얼마나 치열했을까, 얼마나 고통이었을까. 얼마만큼 아픔이었는지 그들의 눈물을 아직도 외면하고 있는 지금의 남과 북이 안타깝다.

산죽처럼 잎을 버리지 못하고 평생을 달고 있는 푸름이 멍자국처럼 번져온다. 산등성이를 내려서니 돌담으로 만들어진 미군 통신대 자리가 보인다. 대열을 벗어나 566고지 계룡산에 미군 통신대 돌벽을 짊어지고 올랐을 핏빛 함성들이 아직 선명하다.

칠백리 섬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부러진 비명을 바위에 묻었고, 계룡산은 바위를 포로처럼 아직도 품고 있는데, 지금 사람들은 핏발 선 워커소리가 이끼처럼 낀 돌벽 안쪽에서 즐겁게 싸 온 도시락을 먹고 있다. 그 벽 속에는 울부짖는 그림자들이 애타게 소원하는데.

내게 힘이 있다면 '산불조심' 철 구조물을 잘라 아직도 아픈 영혼들을 위한 비를 세우고 싶다. 내게 힘이 있다면 산죽이 지키고 있는 샘터를 잘 다듬어 오래 지키고 싶고, 옛 절터 세로 선 바위 안 공터에 진혼제를 지낼 수 있는 넓은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

간식을 먹고 잠시 쉬어가는 바위로 사용하기에는 끝나지 않는 폭동이 서럽다. 무너지고 훼손되어 가는 미군 통신대 유적도 더 이상 식사 자리를 위한 공간으로 버려두고 싶지 않다. 그러기에는 바다와 거제와 포로수용소를 품고 있는 어머니 같아야 할 계룡산이 너무 아프지 않을까. 오를 때보다 더 아프게 산을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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