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데오 모딜리아니(1918·oil on painting 100cm×65cm)

미술품을 즐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지식이 바탕되어야 즐길 수 있는 것인지 그런 바탕이 없어도 오랜 시간동안 축적되어 온 가치 자체인 문화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감동하며 즐거움을 알게 되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예술품을 보는대로만 느끼면서 반응한다면 문화적가치가 너무 즉흥적으로 가치 매김이 될것이며 너무 진지하고 앎을 기준으로만 한다면 대중성이 떨어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이러한 고민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향유하고 즐기는 데에는 사색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것이 잡스러움을 떨치고 고독함으로 창작에 매진한 작가와의 소통이며 오마쥬 이기도 하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앞에서는 숨이 잦아들고 가슴속에 한오락 번잡함조차도 사그라 든다. 그가 그린 누구의 초상화 작품이라도 관계없이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당당한 풍채를 가진 젊은이의 초상에서도 지적이고 우아한 귀족부인의 초상화 앞에서도 습한 안개같은 아련하고 모호한 감정이 가슴을 타고 올라온다.

아마데오 모딜리아니는 이탈리아 태생의 유대인이었다. 22세에 예술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프랑스행을 택했던 '에콜 드 파리'파였던 그는 인물화만을 고집했으며 모델과의 영적인 교류가 없이는 눈동자를 그리지 않는다는 철학적 소견을 그림으로 표출하여 그만의 독자적인 예술적 성취를 이룬 천재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꿈, 야망과는 달리 그는 지독한 고독과 방황으로 파리생활을 보내게 되는데 이런 그에게  쟌 에비테른은 영원의 빛처럼 나타났으며 그의 영원한 뮤즈가 되어 버린다.

쟌을 만난 모딜리아니는 생활의 안정을 찾으면서 그의 걸작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쟌의 초상화를 통하여 그녀의 헌신과 사랑에 보답했으며 마침내 그들 사이에 아름답고 요정같은 딸이 태어났다. 그의 작품 역시 평단의 호평과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1920년 원래 허약했지만 잦은 음주와 무절제한 생활로 몸을 망가뜨린 모딜리아니는 35세의 한창의 나이에 신장염과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성공을 눈앞에 두고 그를 사랑하고 후원해주던 수많은 사람들을 남겨 두고…. 쟌의 슬픔은 무엇으로 위로 받지 못했고 결국 그녀 역시 임신한 몸으로 6층 아파트에서 투신하여 그의 사랑 아마데오 모딜리아니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의 사랑은 모딜리아니의 작품과 더불어 세상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우수에 잠긴 지적이며 아름다운 여인 쟌느 에뷔테른,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절대 고독. 그래서 문화의 속성은 공감이라 생각된다.

글쓴이: 권용복 서양화가(한국미협 현대미술분과 이사/ 現 미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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