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추석 연휴를 끼우고 해외 출장을 가게 됐다. 어린 아들 녀석 둘에게만 차례를 맡기고 갈려니 맘이 편치 않았지만 걱정 말고 잘 다녀오라는 아내의 격려성 배웅을 뒤로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출장지는 동유럽 중심으로 짜여져 있었는데 특히 비엔나에서는 오페라 극장으로 유명한 빈 슈타츠오퍼에서의 '사랑의 묘약'과 뮤직페라인에서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을 연이어 관람하게 되는 꿈의 일정이었다.

특히 빈 필의 공연은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에 의해 직접 연주되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과 차이코프스키의 세레나데 그리고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까지 비교적 쉬우면서도 다채로운 음의 향연을 즐길 수 있었다.

이번 매치는 그대로 아시아투어를 떠나게 돼 아마 이 글이 나갈 때쯤이면 이미 서울에서 공연을 마쳤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에선 전체 프로그램을 모두 모차르트로 짜 놓아 오스트리아 악단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려 하는 모양이다.

이번 방문지인 비엔나는 세계 음악의 수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음악사에서나 음악가들에게 가지는 비중이 월등하다. 

그래서일까. 비행 중에 비엔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우먼 인 골드'라는 영화를 보게 됐는데,  이 영화는 마리아 알트만이라는 미국 할머니가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반환소송을 다룬 영화였다.

얼마 전 국내에 개봉돼 전문가 평가는 나쁘지 않았지만 흥행에선 그다지 재미를 못 봤던 것 같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오스트리아에 정착한 유대인 가족의 수난사를 다루고 있는데,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게 집안의 소장 그림을 모두 빼앗기고 극적으로 미국으로 탈출한 마리아가 50여년이 흐른 뒤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국립미술관에 전시돼 있던 구스타프 클림트 그림 5점을 반환 받기 위해 어려운 소송을 벌이고, 그 과정에 일어난 극적이고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법정 드라마다. 이 영화에는 독립적으로 봐도 아우라가 대단한 문화콘텐츠들이 다수 등장한다.

먼저 소송의 대상이 된 그림 중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은 영화제목 '우먼 인 골드'의 원제이다. 나치가 그림을 강탈한 후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제목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사실 그림을 보면 황금 속의 여인이라는 직설적인 표현이 전혀 과하지 않을 만큼 너무나 사실적인 아델레의 얼굴을 제외하곤 황금 블록 일색이다. 비엔나의 기념품 가게나 패션 관련 상품에는 이 황금색 패턴이 과하다 싶을 만큼 남용되고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분리주의 미술'의 창시자이다. 그는 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그림 속 주인공 아델레의 남편 즉, 마리아 알트만의 삼촌 페르디난트와 친구 사이로 아이가 없어 우울해 하는 아델레를 위로하고자 하는 페르디난트의 부탁으로 아델레를 그렸다고 하는데, 나중엔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클림트는 비엔나 출신의 당대의 또 다른 천재 작곡가 말러의 아내가 됐던 알마의 구애를 받기도 했던 매력남이었던 것 같다.

물론 알마의 생전 표현을 엿보면 클림트나 말러 모두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로 바로 그 명석함으로 비엔나의 연인이었던 알마의 혼을 빼앗았던 모양이다. 아무튼 클림트는 화제의 이 그림 외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지금도 그림의 이면을 궁금하게 하는 '키스'라는 작품도 남겼다.

또 다른 흥밋거리는 이 영화에서 변호사로 나오며 진심을 다해 끈기 있게 소송을 진행해 결국 승소로 이끌어 내는 랜돌 쇤베르크이다. 랜돌은 할아버지와 집안끼리 인연이 엮인 마리아를 도와 감동스런 소송전을 펼치는데 그의 할아버지가 바로 이른바 '12음기법(도데카포니)'으로 유명한 20세기 최고의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이다. 

그림 하나로 인한 소송의 이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히 박물관 급이다. 이들이 한 시대를 살며 이뤄 놓은 예술적 성과들이 오늘날 비엔나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세계 최고의 예술도시로 우러러 보게 만든 것이다.

또 있다. 세계적인 화장품회사 에스티 로더의 회장인 로널드 로더는 200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바로 아델레가 그려진 그 작품 '우먼 인 골드'를 세계 최고가인 1500억 원에 구입했다. 그리고 로더는 누구나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게 해달라는 마리아 알트만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 그림을 뉴욕 노이어 갤러리에 전시해놓고 있다.

이렇듯 이 영화는 거대한 인물들의 면면이 마치 도나우강의 물결처럼 일렁이며 등장했다 사라진다.

우리로선 그들의 재능도, 정의에 대한 신념도,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도, 모든 것이 다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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