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 김미광 거제중앙고 교사
추석 명절 동안 오랜만에 친지들과 친구들을 만났다. 다들 무탈하고 행복하게 사니 더 이상 즐거운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단 한사람은 여전히 행복하지 못한 얼굴을 하고 부침개를 부치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면 나는 늘 마음이 불편하다. 입만 열면 부정적인 단어요, 가족과 남편에 대한 불평이 끊이질 않고 주변 상황이나, 직장이나 모든 것이 불만스럽고 짜증나는 것이니 어찌 주변 사람들이 그와 얘기하는 것이 편할 수가 있겠는가.

올해는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얘기하면 점점 더 사람이 보기 싫어지고 더 같이 살기 힘들어진다. 그러면 본인의 삶도 짜증이 나고 살기 힘들어지니 불만스럽더라도 긍정적으로 보고 감사하는 말을 해봐라. 불평의 고리를 끊어라.

그녀의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100% 이해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녀를 짜증나게 만드는 남편이 순전히 잘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설사 그랬다 해도 한 사람이 먼저 불평의 고리를 끊고 감사하는 사람이 된다면 조만간 불평스러웠던 삶이 감사가 넘치는 삶으로 바뀌는 원리를 알았으면 좋겠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평과 원망이 아니다. 감사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랑이 없으니 매사가 불평스럽고 모든 것이 다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인데 진정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사랑하려는 노력이다. 감사는 그 사랑으로 다가가는 한 가지 방법이고.

참고로, 나는 한 번도 그 불평하는 여자의 남편이 다른 사람 앞에서 그 아내를 비난하거나 험담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아내는 입만 열면 남편 험담이고 불평이니, 갈등의 책임소재가 설사 남편에게 있더라도 누가 더 갈등의 골을 깊게 하는지는 안 봐도 알 것이다.

내가 아는 그 남편은 성실하고 과묵한 사람이다.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자신은 일 년에 옷 한 벌 사 입는 일이 없어도 아이들에게는 최선을 다하고, 늙은 노모를 수시로 들여다보는 아들이다. 비록 사회성이 떨어져서 사람들과 유들유들 잘 어울리거나 말솜씨가 좋아 사람의 마음에 똑 떨어지는 말을 해서 그들을 즐겁게 하지는 못하지만 속정이 깊고 신의가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누구보다도 힘들게 일해서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 그가 바로 내 남동생이다.

그런데 그 올케라는 여자는 시댁에 오면 앉기가 무섭게 남편에 대한 불평부터 시작하고 감사해하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그 삶이 오죽 팍팍하고 힘들겠는가. 남으로부터 불평 받는 것 보다 남을 비판하고 불평하는 것이 더 힘들고 그게 독이 되어 자신을 병들게 하는데, 그가 얼마나 자신도 모르게 자기의 건강을 해치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 본인은 모를 것이다. 게다가 시어머니 얘기를 하면 시어머니의 부정적인 면부터 먼저 얘기하고, 직장 얘기를 하면 직장에 대한 불평부터 먼저 꺼낸다. 시야가 부정적이고 불평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사람의 두뇌는 세뇌가 가능하다. 별로 감사하지 않더라도 자주 감사의 말을 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 그 사람의 삶은 긍정적으로 변하고 감사가 넘치는 삶으로 바뀐다.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약이다. 내가 하는 감사의 말은 상대방을 변화시키고, 내 삶과 내 가족의 삶을 바꾸는 것이다.

이어령씨 글 중에서 이런 글이 있다. '감사하는 행위, 그것은 벽에다 던지는 공처럼 언제나 자신에게 돌아온다.' 오늘 우리의 삶에 감사의 공을 얼마나 많이 던졌는지 한번 돌이켜보자. 감사의 공을 던진 만큼 우리의 삶은 행복해지리라. 그렇다. 나도 내 동생의 처가 비록 불만투성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좋은 엄마라는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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