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 윤성원 거제불교거사림 2기 학생회장
삼도처가 있으니 성을 달리하고 사람을 달리하며 법을 달리한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남을 위해 설(說) 하지만 아무 이익도 거두지 못하는 것이고 사람이 하는 바는 일체가 숙명으로 인해 지어졌고 일체가 다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는 것이다.

마음도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잠시도 쉬지 않고 변화한다. 눈앞에 보이는 고정된 형상과 관념에 집착하는 까닭에 육체적 고통이 생긴다. 우리 마음에 의해 변화하는 역본설의 놀라운 철학은 부처님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시대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정신적 고통은 미혼적 포기적 사물을 싫어하는 심리현상과 함께 일어나는 마음의 불만족이라 할 수 있다. 육체적 고통은 의식과 함께 일어나는 마음이 온유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이다.

정신적 고통은 기도와 수행을 통해서 완전히 버릴 수 있지만 육체적인 고통은 우리 스스로 버리기가 어렵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 제자라 하더라도 육체적 고통까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없다. 부처님께서도 육체가 아파 고통을 겪으신 일이 있었고 재가자가 공양을 올린 음식을 드시고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으신 일도 있었다.

때로는 육체적 고통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몸의 어느 부위에 문제가 생겨도 통증이 드러나야  문제를 인지하고 치료할 수 있다. 몸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건강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마음이 힘들어 사회나 직업에 육체적 고통이라 판단하고 마음으로 성냄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다. 화는 정신적인 불만족과 함께 하기 때문에 항상 정신적인 괴로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정신적인 고통은 현실에서 멀리가도 따라 다니면서 자신을 테스트한다. 조금 힘들다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인간관계가 좋을 것 없고, 화가 많은 사람의 말은 마치 가시와 같아서 사회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서로 불편함을 만들어 간다.

평소 직장이나 사회에 좋은 관계를 맺고 지내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를 한 번 심하게 내면 주변에서 멀어질 것이다. 고통의 성냄은 참아야 하며 성냄은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에게도 매우 위험한 심리 현상이 된다. 화가 잠깐 스쳐 지나갈 때는 별것 아닐 수 있지만 반복 되는 것을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강력해진 화를 버리려면 참선과 인내가 필요하다. 불씨가 처음 올라올 때는 쉽게 끌 수 있지만 불길이 활활 타오른 이후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성냄은 버리고 태워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현실사회는 생존 경쟁이 심해 스트레스 지수가 매우 높고 사람들도 많이 거칠어져 가고 있다. 금전과 명예를 기준으로 변화면서 우리의 인품이나 인격보다는 재물과 권세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줄을 세우고, 인간적 윤리보다 물질적 가치가 우선시 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부처님 참뜻도 잊고 사회 전반적으로 불만이 많아져 성냄도 많아지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원한은 원한으로 갚아지지 않다고 하시고 내 마음의 분노를 먼저 내려놓고 자비가 가득한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야 진정으로 욕구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신다.

화를 내려놓으면 마음이 가라앉아 고요해지기 때문에 지혜롭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일을 도모하기 전에 항상 화를 버리고 고요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갖은 것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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