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詩人(자료 : 거제향토문화사)

어떤 촌양반이 한양에 갔더니 진기한 물건을 파는 데가 많았다. 촌에서는 보고 듣지도 못했던 물건들이라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이것저것 살피던 중에 거울을 보았다. 처음에는 웬 낯선 사람이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도대체 사람을 이 안에 넣어서 파는 법이 어디 있소?"

하고 따졌다. 상점주인은 촌양반을 놀려 줄 생각으로

 "방금 당신이 본 것은 당신이요. 그걸 보는 순간 당신이 그 안에 들어간거요. 그러니까 그걸 사서 잘 봉해 두었다가 당신이 죽고 난 뒤 아들이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 꺼내보면 그 안에 당신이 있으니 아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소."

촌양반은 정말 그런 줄 알고 정상적인 값보다 훨씬 비싸게 사서는 집에 가져와 잘 포장하여 귀한 보물을 넣어 두는 궤짝에 넣고 열쇠로 채워 두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자 촌양반이 죽을 때가 되었다. 촌양반은 아들을 불러놓고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저 궤짝 안에 내가 들어 있으니 내가 보고 싶거들랑 꺼내 보아라."

하고는 죽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죽을 때가 되니까 노망이 들어 헛소리라도 하는 것으로 여기고 궤짝 속의 물건을 잊어버리고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이 나서 궤짝을 열고 그 속에 싸둔 물건을 꺼내 보았다.

 "아니, 정말 이 속에 아버지가 계시는구나."

하며 놀랐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 생김새가 워낙 비슷했고 거울이라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거울 속의 자기가 아버지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거울을 궤짝 속에 꽁꽁 숨겨두고 처음에는 한 달에 한번 정도 꺼내보더니 차츰 갈수록 거울을 꺼내보는 빈도가 높아졌다.

아내가 생각하니 남편의 하는 거동이 무엇인지 이상했다. 방문을 잠그고 혼자서 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중얼거리기도 하고, 누구하고 말을 하는 것도 같은데 알 수가 없었다. 하루는 아내가 남편이 밭에 나간 사이에 들어가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궤짝 말고는 별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궤짝을 열고 곱게 싸둔 물건을 꺼내니 거기에 어떤 여자가 있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담. 웬 여자를 궤짝 속에 숨겨두고 있었다니"

아내는 여자가 있는 물건을 다시 궤짝에 넣고 남편이 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남편이 들어오자

 "여보, 도대체 나 말고 어떤 여자를 숨겨 놓고 딴짓을 하다니"

하며 따지고 들었다. 남편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그게 무슨 말이요?"
 "궤짝에 여자를 숨겨두고 할 짓 다했으면서 시치미를 떼다니, 이것 봐요"

아내는 궤짝 속의 물건을 꺼내 남편에게 내밀었다. 남편이 거울을 보자 거기에는 아버지가 있을 뿐이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남편은 거울 앞에서 절을 올리며 용서를 빌었다. 아내가 거울을 다시 들어보니 역시 거기에는 아버지는 없고 어떤 여자만 성이나 씩씩거리고 있었다.

 "여자를 숨겨 놓고 할 말이 없으니 아버지를 팔려?"
 "아버지가 계신다니까. 한 번 봐"

남편이 거울을 들어 아내에게 내밀다가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이 거울 속에 잡혔다.

 "어머, 당신 닮은 이 남자는 누구요?"
 "누구긴 누구야, 당신도 나 닮은 남자를 데려다 놓고 나 몰래 재미보고 있었구나."

그렇게 서로 의심하다가 결국을 갈라섰다는 거울소동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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