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지난 9월4일, 가을의 초입에 들어서며 이탈리아 볼자노에서 날아든 낭보가 하나 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재학 중인 문지영(20)양이'제60회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것이다.

사실 요즘 웬만한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했다는 것은 별로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워낙 많은 음악 영재들이 자고 일어나면 수상 소식을 전해 오기 때문이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면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하는 특수한 교육열도 한 몫 하겠지만 우리민족이 가지고 있는 감수성이나 예술적 재능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적으로 보면 음악콩쿠르나 무용콩쿠르 같은 연희 분야의 경연대회가 셀 수도 없이 많이 개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음악콩쿠르만 보더라도 각 악기 종목별로 수많은 콩쿠르가 존재하겠지만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메이저 콩쿠르만 추려 생각해도 130여 개에 달한다. 우리나라에도 서울과 통영 그리고 제주에서 일종의 국제 공인 콩쿠르가 열리고 있다. 아시아 존으로 범위를 넓혀 보면 일본이 5곳, 중국이 3곳으로 10여 곳이 아시아를 대표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 베이징국제음악 콩쿠르가 예심을 거쳐 본선 진출자를 다 가려 놓고는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대회를 취소해버려 빈축을 산 일이 있었다. 재정적인 이유일 것이라고 추측은 하지만 정말 국가적으로 큰 창피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의 신예 음악가들도 국제무대에서 큰 각광을 받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중국이나 베이징시의 결정은 상당히 안타깝고 국제사회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불신을 스스로 자초했다고 본다.

이렇듯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국제콩쿠르는 선진국 지수에도 꼽힐 수 있을 만큼 정교한 행사이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섬세하기 짝이 없는 참가자들을 아무런 불평이 나오지 않도록 다룰 줄 알아야 하고 명망 있는 유수의 심사위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최소 열흘 이상 그 도시에 머물면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기반을 둔 세련된 의전과 공평하고 엄격한 심사를 할 수 있도록 교감해 나가야 하는 기술적 완성도를 지녀야 한다.
 그런 것들이 잘 갖춰져 오랜 세월 동안 명성을 이어가야 명문 콩쿠르로 손꼽힐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 문지영양이 입상한 '부조니 콩쿠르'도 바로 그런 몇 되지 않는 명문 콩쿠르 중에 하나이다. 1949년 이탈리아 출신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페루치오 부조니(1866~1924)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부조니 콩쿠르는 2001년 이후 격년제로 바뀐 이후 단 3명에게만 1위를 안겨줬을 정도로 까다로운 대회로 알려져 있는데, 1969년 백건우가 골드메달, 1980년 서혜경과 1997년 이윤수가 각각 1위 없는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60년 역사 중 한국인이 우승을 차지한 건 이번 문지영양이 처음인 것이다. 

여수가 고향인 문지영양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형편 때문에 '피아노 없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지면서 음악계의 관심을 받았다.

손열음과 김선욱을 키워낸 김대진교수의 지도를 받아 한국의 명문 클래스의 계보를 이어 받기도 한 문양은 2009년 루빈스타인콩쿠르에서도 우승하면서 이미 천재성을 과시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재의 출현은 언제나 기쁜 일이다. 다만 우리는 이와 같이 뛰어난 재주를 가진 예술인들을 종종 만나긴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여전한 떨림과 감동을 선사하는 성숙한 예술인은 쉬이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실의 계절에 접어들며, 익을수록 고개 숙이는 벼처럼 성숙한 예술인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얼마 전 코리안심포니의 임헌정 선생이 식사자리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요즘 친구들은 너무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하는 것 같아요. 좋은 시설과 훌륭한 선생님이 계시니 본인이 경험으로 습득해야 할 것을 건너뛰는 것 같아요. 결과만 보면 훌륭하기 짝이 없지만 과정이 생략된 게 시간이 지나면 티가 나게 되지요. 음 하나마다 고뇌하며 연마해야 되는 시간이 사라진 거죠."

벼가 잘 익으려면 적당한 일조량이 필요하듯이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게 반드시 시간을 통해 담금질 돼야 하는 게 있다. 길게 보고 인생을 건 예술인들이 나올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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