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땅에 성지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성지를 절에 보내 중이 되게 했다. 성지는 도통한 스승을 만나 풍수지리에 통달하여 성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름이 났다. 그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성지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집으로 왔다. 자식이라고는 오로지 성지스님 혼자뿐인지라 앞으로 어머니의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스님은 명당을 찾아 어머니를 묻기로 작정하고 묘자리를 구하러 다녔다. 마침 어느 곳에 넓은 들이 있고 들 가운데 나지막한 산이 있었다. 산이라고 하지만 그냥 들 가운데 조금 높고 넓은 터로 사람들이 들에서 일하다가 쉬거나 점심을 먹을 때는 거기를 이용했다.
성지스님은 어머니를 산에 묻지 않고 들 한가운데에 묻었다. 사람들은 풍수지리에 통달한 사람이 어머니를 산에 묻지 않고 들에다 묻었다고 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님은
"여기가 배고프지 않을 명당이다."
라며 알듯 모를 듯한 말만 남기고 어머니 묘를 거기에 쓰고 떠났다. 농사철에 근처의 농부가 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을 때 제사를 지내주는 자손도 없는 묘를 보니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스님의 어머니는 성이 고씨(高氏)였다.
농부는 들에서 일하다가 밥을 먹을 때면 "고씨네-"하면서 그 여자의 성을 부르며 밥 한 술을 던져주었다. 그랬더니 그 해에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다른 집들은 농사가 다 망쳤는데, "고씨네-"하면서 밥 한 술 던져준 농부의 논에는 풍년이 들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고씨네 무덤에 적선을 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 후로는 "고씨네-"하고 첫 술을 고씨여인에게 먼저 주면 농사가 잘된다는 소문이 나자사람들은 서로 고씨여인의 묘에 음식을 갖다 주며 "고씨네-"하고 불렀다. 먼 곳에서 이 소문을 들은 농부들은 그곳까지 갈 수가 없자 먼 곳을 향해 첫 술을 던지면서 "고씨네-"하고 외쳤다. 심지어 들놀이 산놀이 뱃놀이를 가서도 음식을 먹기 전에는 첫 술을 고씨여인을 위해 공희(供犧)했다.
논 가운데 어머니의 묘를 썼다고 욕하던 사람들이 역시 성지스님은 혜안을 가진 도승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윤일광 詩人(자료: 거제향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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