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도에 가기 위해 거제도 가배항에서 출발하는 장사도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가배항 바다는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다. 멀리서 여기까지 밀려오는 파도가 여러 섬들을 지나오면서 이리저리 부서지다보니 잔잔할 수밖에 없을 듯싶다. 실제로 외도가 있는 거제도 동부해역이 거센 바람과 풍랑으로 유람선 결항이 있을 때도 장사도유람선은 운항하기 때문에 상당수의 승객이 가배항 쪽으로 몰려온다고 한다.

오전 11시 정각이 되니 70여명을 태운 큰 배가 뱃고동을 울리며 미끄러지듯 바다를 가르며 움직이더니 곧 배 꽁무니에 흰 포말을 일으키며 속도를 높여간다. 객실에서, 혹은 뱃전에서 삼삼오오 왁자지껄 이야기꽃이 피어나고 사진을 찍으랴 어린아이 챙기랴 여기저기 왔다 갔다하는 승객들로 어수선하다.

선장은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앞만 쳐다보며 누가 듣거나 말거나 주변 경관과 가배유람선 그리고 장사도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고 있다.

배 양쪽으로 섬들이 많이 보이고, 굴양식장과 여러 가지 부표들이 꽤 많이 보인다. 통영과 거제도에서 나오는 굴과 멍게가 전국 생산량의 70%라고 하는 말이 실감이 난다.

30분이 채 못돼서 장사도가 배 앞에 와 닿았다. 섬 초입새에 '까멜리아(camellia)'라고 크게 쓴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섬에 오르는 승객들을 향해 동백나무 자생섬이라는 이미지를 단번에 각인시킨다. 아닌게 아니라 섬 전체가 대부분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그리고 이름도 생소한 구실밤잣나무들로 자연림을 이루고 있다.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숲 냄새, 꽃 내음이 마냥 신선하다. 가파른 길이 없어 다니기에도 불편이 없다. 길바닥에는 따라가면 되도록 화살표 동선을 그렸고 안내표지판도 예쁘게 단장돼 있다. 군데군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와 섬들은 정말 아름답다.

드라마 촬영지도 몇 곳 있고 무지개다리·동백터널·식물원·테마가 있는 두상 등이 계속 발길을 이끌었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섬아기집', '장사도 분교', '말뚝박기 놀이 조형물' 그리고 '작은 예배당'이었다. 거기에서는 섬과 가장 잘 어울리는 섬사람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섬다운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토록 소박하고 정겨웠을 모습들이 지금은 다 어딜 갔단 말인가! 현재는 주민이 없지만 1973년도만 해도 이 섬에 13가구 83명이나 살았고, 초등학교와 교회당도 있었다니 격세지감이 든다. 또 하나 새삼스런 풍경은, 청마 유치환의 시 '행복'과 정운 이영도의 시조 '황혼에 서서'를 앞뒤로 새겨놓고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는 커다란 시비(詩碑)다.

20년간 5000통 가량의 가장 긴 연서를 주고받은 문인으로 알려진 청마와 정운의 러브스토리를 이야기하고자 여기 저런 큰 시비를 세웠으리라.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청마의 출생지를 통영으로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제도가 맞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장사도는 실제로 거제도에서 가깝고 거제도에서 물과 전기를 공급하지만 행정구역은 통영시에 속한다는 걸 아는 나로서는 청마의 시비가 이렇게 장사도에 서 있는 걸 보게 되니 참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에 한참이나 머무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선장은 주변 섬 소개와 역사에 얽힌 이야기도 곁들여 들려준다. 특히 한산도와 이순신, 추봉도와 포로수용소 얘기는 귀가 솔깃했지만 너무 간단히 끝내버린다. 바다 저쪽에는 황토흙을 잔뜩 실은 바지선이 적조확산을 막기 위해 황토흙을 내뿜고 있다.

어느덧 저 앞에 가배마을이 보인다. 장사도 유람이 끝나면서 몇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첫째는 장사도란 이름이다. 지금의 '장사도(長蛇島)'라는 이름은 섬이 긴 뱀처럼 생겼다고 해서 '진뱀이섬'이라고도 불렀는데, 그보다 앞서서는 '늬비섬' 혹은 '잠사도(蠶絲島)'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늬비'란 누에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한 공무원이 섬 이름을 등록하며 '누에 잠(蠶)'이 어렵자 '길 장(長)'을 붙이는 바람에 장사도가 됐다는 말이 전해진다. 섬 모양새와 일치하는 예쁜 우리 말 '늬비섬'이란 이름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다.

둘째는 2시간동안 섬을 돌아보고 타고 온 배로 다시 가야한다는 점은 더 자유롭고 느긋하게 섬에 머물고 싶은 개인에게는 불편한 제약이 아닐 수 없다. 가파른 언덕길은 별로 없어서 다니기에 힘들지 않았지만 여유 있게 구경하기에는 벅찼다. 셋째는 배터와 뱃길이 가배마을·한산도·용초도 등 역사성이 짙은 곳인데 이런 점이 간과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배항에 와서 배타기 전후 동부면 가배량성을 둘러보며 장사도의 아름다운 구석구석을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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