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철봉 칼럼위원

▲ 문철봉 통영YMCA 사무총장
"일본에서 교통사고 신고하면 누가 먼저 올까요?"
"보험사!"
"그럼 한국에선요?"
"견인차!"

이런 난센스 같은 말들이 농이 아닌 진담이라며 무릎을 쳤던 적이 있다. 사람의 안전보다 돈벌이가 먼저인 현 세태를 스스로 비웃는 말이다. 헌데 이 보다 더한 꼴을 보게 되니 '어쩌다 이 지경인지'를 뇌는 마음 저 밑에는 근심 보다 두려움이 더 깔린다.

최근 철원의 휴전선으로 평화 기도회에 참석 하기위해 서울행 버스를 탔을 때의 일이다.

고성을 들러 가는 28인승의 일반고속에 여남은 사람이 탑승해서 통영을 출발했다. 언제부턴가 혼자 앉아가는 3, 6, 9, 12번의 좌석보다 두 사람이 앉아 가는 쪽이 좋아서 창 쪽이 아닌 통로 쪽의 11번 좌석을 예매해서 앉았고 빈 10번의 옆자리에는 배낭을 놓았다. 이날 이렇게 앉게 된 것이 다행스런 일이라 여기게 된 것은 고성읍을 들어서는 지점인 율대휴게소 사거리를 막 지나서이다.

우리 버스 앞에 고철을 나르는 25톤의 큰 트럭이 1차선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가 탄 버스는 트럭을 뒤 따라 2차선을 달리며 추월을 시도하는 순간이었다. 트럭은 고철을 싣고 나르는 용도라 화물칸 난간을 철판으로 덧대어 세웠고 이 난간이 적재함 바깥으로 기우러져 약간 삐져나온 형국이었다.

눈 가까이에 드는 순간 위험하다 느꼈고 "우리 버스가 좀 더 간격을 둬야하는데" 하는 찰라 와장창 한다. 위기반응으로 "떨어져요!" 외마디를 질렀지만 소용없었고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창가 쪽을 비우고 앉았기에 유리의 파편을 적게 맞을 수 있었던 다행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버스기사는 이렇게 아수라장이 된 차의 상태는 아랑곳 하지 않고 상대 트럭을 추월해 가로 막기를 먼저하고선 차를 갓길로 세웠다.

그리고 득달 같이 문을 열고는 뒤 따라 멈춘 차의 트럭 기사에게 곧장 달려가 삿대질을 하며 맞장을 한다. 이러는 사이 승객인 우리는 황망히 일어나 유리의 파편을 털어내는데 놀란 몸이라 다리에 힘이 빠진 여인이 풀썩 주저앉다가 도리어 시트의 유리파편에 베이며 비명을 질렀다.

어쩔 수 없이 나섰다. "여러분 의자에 앉지 말고 소지품을 챙겨 모두 차에서 내리세요."하고선 서둘러 내몰아놓고 보니 모두 다 놀라기는 했지만 크게 다친 사람은 없고 유리 파편에 베인 사람이 두서넛이다. 이런데도 버스기사는 트럭기사와 다툼을 계속하고 있기에 "차 안에 구급약 상자가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다.

명확치도 않은 손짓으로 차안을 가르치기에 올라가 운전석 주변과 선반을 다 뒤져도 구급상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내려와 물어도 전화기로 통화만 계속한다. 결국 큰소리로 "아니, 구급상자가 어디 있냐고요? 다친 사람이 있는데 전화만 하고 있을 거예요?"라고 고함을 치니 그제야 약상자가 없다고 한다.

참 허탈했다. 이것이 우리의 안전 현주소라고 생각하니 한심하다 못해 말문이 막혔다. 이 버스기사는 이러고도 다친 사람을 돌아보기는커녕 계속 전화기만 붙들고 있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는 아니라 해도 사고가 나면 자신의 승객의 안전을 돌아보는 것이 먼저여야하고 그래도 작은 약상자는 하나 정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헌데 이 버스기사의 사고 대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안전 불감증을 넘어 아예 안전의식이라고는 없는 안전 상실증이지 않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아니라고, 애써 머리 흔들며 부정하는데도 세월호의 선장이 다시 머리에 떠오르며 '혹여 이 사회가 이리 되어 가는가?' 하는 생각에 등짝이 오싹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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