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남기/ '문장21' 시 등단

 햇살에 투영된
 하얀 물고기 갈비뼈
 앙상한 거리를 뒹굴고
 낙엽은 내공을 쌓는 시간
 허공에 걸린 자화상
 가을 속으로 덥석 안긴다
 바람에 분해된 추색
 가슴속 스며든 색깔들
 휑하니 나뭇가지에 매달려
 시간에 눌린 세월을 맛본다
 추색 가득히 덧칠을 더하는
 노랗게 누워 있는 신작로
 가을의 헛기침 소리에
 펄럭이는 엽서 한 장
 가을날의 자화상
 갈잎에 대롱거린다

·시 읽기: 종합문예지 '문장21' 통권30호(2015, 가을호)에 실린 시이다. 시인은 제목에서 밝히고 있듯 가을의 자연을 통해 자화상을 그려 내고 있다. 가을날 낙엽이 "앙상한 거리를 뒹굴"면서 "내공을 쌓는 시간" 동안 "허공에 걸린 자화상"을 떠올린다. 나아가 낙엽을 "헛기침 소리에/ 펄럭이는 엽서 한 장"이라고 여기면서 이를 통해 "가을날의 자화상"을 갈무리한다. 자화상이라는 말은 자의식 세계의 표상이기도 하다. 인간은 매일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듯 자화상을 갈무리하며 살아간다.
 흔히 자화상이라고 하면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하다가 물에 빠져 죽어서 수선화가 된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시스, 이상의 '거울', 윤동주와 서정주의 '자화상'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시적 화자는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갈등을 드러내기보다는 가을날 낙엽을 통해 자아성찰 혹은 자기 애증을 드러내고 있다.
 시인 이상의 '거울'처럼 오르페우스적이거나 윤동주의 '자화상'처럼 나르시시즘적이지 않지만, 나름대로 가을빛을 머금은 자의식 세계를 표출하고 있다. 이 시처럼 늘 아름다운 자화상을 생각하면서 살다 보면 평온한 얼굴과 고운 마음씨를 갖게 될 것이다. 믿어 보자.   (문학평론가 신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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