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성고 진선진 교장신부, 권위 사양하며 행복학교 만들기 위해 헌신

2교시 쉬는 시간, 교무실 문 앞 복도에서 여학생들이 서성거린다. 무슨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교장 선생님을 뵙고 싶어 기다린다며 환하게 웃는다.

"교장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지 오래됐거든요. 담소 나누면서 화통한 웃음소리에 기를 받고 가려구요."

특별한 이유가 없다. 해성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생활 가운데 느낀 불편함, 학교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의견 등 공적인 주제 뿐 아니라 아주 사소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도 교장실의 문을 두드린다.

거기에는 학생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작은 소리에도 소통하려는 작은 마음의 힘이 담겨 있다. 교장실의 문과 창문 또한 스스럼없이 기웃거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투명하다.

해성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장 선생님의 방문을 두드릴 수 있는 것은 절대적인 신뢰 때문이다. 항상 그 자리에서 자신을 맞아 줄 것이라는 긍정적인 믿음은 아침 등굣길에서부터 시작된다.

진선진 교장 신부님은 해성고등학교에 부임해 온 날부터 지금까지 억수같은 비가 오나 매서운 바람이 귓날을 가를 때나 아이들이 등교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정문 앞을 지킨다.

그리고는 올라오는 학생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한다. 입학생들은 그 낯선 정경에 쑥스러워 고개를 숙이지만 한 달만 지나면 함께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눈다.

2·3학년 학생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정경이라 이제 교장선생님이 계시지 않은 등굣길은 상상할 수 없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아침인사와 더불어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공부는 잘 되어 가는지 다정한 물음까지 더해진 해성고의 등굣길은 1년 365일 따뜻한 봄이다.

교사들을 비롯한 주위의 걱정스러움과 만류가 더해지려하면 "저는 저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 선생님들은 선생님들의 일을 하시면 됩니다" 라고 일축해 버린다.

잔디밭에 앉아 잡초 뽑는 일, 보이지 않는 어디선가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쓰는 일, 식당에서 식사를 하신 후 급식소 이모님들을 도와 배식에 가끔 참여하는 일을 도맡아 하시는 교장선생님은 학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계신 교장 선생님을 향해 진정으로 소통하려 다가가고 있었다.

학교의 가장 어른이며 책임자인 교장이라는 직분은 학교 안에서 가장 다가가기 힘든 권위와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높은 벽에 고립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진선진 교장 신부님은 벽 위에 올라있는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스스로 생각해온 교육철학을 학교 현장으로 내려와 소리 없이 하나씩 실천하려고 애쓴다.

모든 고민의 중심은 학생들과 교사가 학교 안에서 마음껏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데에 대한 전폭적 투자이다. 행복할 수 있도록 존중받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자신을 사랑하며 또 다른 나인 타인을 존중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 때문이다.

수도권 합격자가 많이 나오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 학교를 찾아온 학생 개개인이 행복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 가도록 교육과정을 짜고 그 배움의 과정 속에서 아이들의 인성이 아름답게 다듬어져 가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아침 인사를 나누며 등교한 학생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클래식을 들려주고, 화장실에서 편안할 수 있도록 잔잔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무엇보다 책 읽는 해성문화를 정학시키고자 2학년들에게는 독서 시간을 주어 스스로 찾아 작성한 독서목록에 따라 책을 읽고 독후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1학년들은 매월 1회 인디고와 연계해 강사를 초빙, 인문학 특강을 들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활성화 했다. 물론 이 특강이 이뤄지는 세미나실의 맨 앞자리는 교장 선생님의 자리다.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의 옆자리에 앉아 학생들이 참여하는 모든 행사에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을 함께 하며 가장 큰 소리로 웃어 준다.

중국 송나라 때 휘종이 '꽃을 밝고 돌아가니 말발굽에서 향기가 난다'는 시제를 화가들에게 주고 그림을 그리게 했다 모두들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를 어떻게 그릴까 쩔쩔매고 있을 때 어떤 젊은 화가가 당당하게 그림을 그려 제출했다. 그는 말 한 마리가 달려가는데 그 꽁무니를 나비 떼가 뒤쫓아가는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몸소 행동으로 일치시키는 삶을 살아내기는 참 힘들다. 그러나 여기, 해성고등학교에는 작은 생각을 소신껏 소리 없이 그 자리에서 실천해 가는 따뜻한 리더가 있다. 진심의 향기를 맡을 줄 아는 학생들이 늘 교장실 주변을 서성거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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