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지난 4일, 10여년의 산고 끝에 드디어 개관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보기 위해 광주로 달려 갔다. 수년 전부터 조금씩 부분 개관해 왔던 터라 깜짝 놀랄만한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고 간 건 아니었지만 3시간 남짓을 달려가서 만난 전당의 위용은 이전에 잠깐 봤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전남도청이 있던 역사의 거리를 대부분 살리려 노력해서 인지 어마어마한 규모의 전당시설은 거의 지하층 높이에 배치되어 금남로를 둘러 나와 광장을 걸을 때는 금방 만나게 될 전당의 규모나 형태를 전혀 가름할 수 없었다.

한라산 정상에서 백록담을 또는 백두산 정상에서 천지를 내려다보듯 큰 구 속에 형성되어 있는 전당 건물은 5.18 현장은 최대한 보존하며 겸손한 높이를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얼핏 보면 서울에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일단 사이즈와 유기적인 동선에서 유사점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개관페스티벌이 벌어지고 있기도 했지만 선선한 날씨에 휴일이라 그런지 나들이 나온 사람들도 꽤 눈에 띄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 정부에서 예산을 조달해 건립한 것이다. 워낙 큰 스케일로 계획되다 보니 정부가 바뀔 때마다 난관들이 많았던 것 같다.

지금도 운영비와 관련해서 중앙부처와 지자체 간의 이견이 잘 조율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전당에는 문화정보원과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으로 크게 나눠져 있고 이들을 연결시키고 있는 대부분의 동선은 도심 속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어린이문화원이라는 공간을 계획한 것은 매우 잘 한 일이라 생각된다. 어린이에 대한 배려나 고려가 어떤 사업에서든 당연시 되어야 선진국 기준에 부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간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복합적인 공연이 가능하도록 디자인된 대극장과 중극장은 매우 창의적이긴 하지만 연간 공연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될지 방법적인 면이나 비용적인 면 모두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을 것 같아,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만나 보니 개관 준비에 많이 지쳐 보였다. 페스티벌 '봄'이라는 순수민간 페스티벌을 관의 정례적인 도움 없이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인물이다. 무용 쪽에 베이스를 가지고 있으면서 예술경영이라는 학문을 미국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한 이력을 가져서인지 일단 프로그램 자체는 매우 실험적이고 창의적이었다.  

공연 장소도 공연물이 가장 최적화할 수 있는 곳으로, 전당만을 꼭 고집하지 않고 배치해 뒀는데, 우리 일행이 관람한 공연은 '봄의 제전'이라는 작품이었다.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봄의 제전을 로메오 카스텔루치가 새로운 해석을 해서 만든 작품이었다.

찾아간 공연장은 과거 모 방송국의 녹화장으로 사용됐던 곳으로 쇠붙이 계단이 주는 차가움이랑 음침한 조명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음악에 맞춰 무대 위 바튼에 붙어 있는 각종 기계들이 하얀 가루를 뿜어내며 모노톤의 조명아래 춤을 추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객석 방향으로 쏟아내는 정체불명의 물질들에 흠칫 놀래가며 1시간 가까운 공연 동안 대단한 집중을 이끌어 내는 창작자의 아이디어와 연출이 존경스러웠다. 알고 보니 무수히 쏟아내던 하얀 가루는 소 75마리 분의 뼈를 위생처리 과정을 거쳐 잘게 분쇄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스트라빈스키가 표현했던 생동적인 봄의 색채를 사체 중 최후의 소재인 뼈를 이용해 죽음과 현존의 경계를 비언어적으로 봄의 생명력과 대비해 표현한 것이다. 무대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상력의 한계를 넘나들면서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열어 나가겠다는 의지는 비단 예술 분야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 성 싶다. 흔히 말하는 IT와 CT의 결합이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본 것이다. 

이제 공연기획자는 공학도도 만나야 하고 원예 전문가도 만나야 한다. 더 이상의 볼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관객들의 필요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잊지도 않고 또 오는 공연,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기획이 될 것이다.

문화는 시대를 반영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시대를 선도해야 할 소명도 있는 것이다. 광주 분들에겐 좀 죄송하지만 이왕 아시아의 창문이 되어 세계로 나아가는 창구가 되고 싶었다면 이제 광주정신이나 5.18의 흔적은 좀 더 은유적으로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광주가 우리에게 문화적으로 자극을 주는 좋은 공간이 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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