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내가 작년까지 근무했던 고등학교의 제자에게서 대학 입학과 관련한 자기소개서를 살펴봐 달라는 부탁을 받은 모양이다. 한참 고심하며 읽어 본 아내가 불쑥 나에게 한 번 봐달라고 글을 내민다. 자기소개서를 읽어 보니 왜 아내가 나에게 글을 건넸는지 상황이 이해됐다.

그 학생은 문화경영학과 또는 문화콘텐츠학과가 있는 학교를 골라 몇 군데 지원을 할 계획인 듯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에 문화콘텐츠라는 이름의 학과가 생긴 게 불과 10여년이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요즘은 여러 대학에서 이 생소한 학과를 신설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학 정원이 묶여 있어 학부신설이 어려우면 대학원 과정이나 유사학과끼리의 협동화 과정으로 먼저 시작부터 하는 추세이다.

현대사회는 지식과 정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정보화 사회이다. 정보화 사회와 관련해서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할 것 없이 지난 10년간 단체장들의 인사말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어휘 중 하나라는 조사를 본 적이 있다.

정보화 사회는 지식과 정보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원천이 되는 사회다. 엘빈 토플러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정보에 쉽게 접근하고 정보의 분배가 편리해 지는 사회를 '제3의 물결', 즉 정보화 사회라고 하였다.  

농경혁명과 상업혁명에 이어 정보혁명을 통해 인류의 생활패턴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훨씬 선명한 방식으로 의견을 소통할 수 있게 됐고 이런 소통방식으로 정치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으며 노동생산성을 높여 예전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을 확보해 인간중심의 다른 활동에 배려하게 됐다.

세계가 하나가 되는 공간의 단일화 현상에 힘입어 각자가 가진 정체성을 여러 나라로 소개하기 쉬운 구조가 되었고 콜라보를 통한 새로운 형태의 결과물들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달리 말하면, 정보화 사회는 콘텐츠 홍수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콘텐츠가 옥석을 가리기 전의 원석같은 개념이라면 문화콘텐츠는 기본적으로 한 사회에서 일정 수준 이상 검증을 거친 가치로운 것들이다. 또한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재료들인 것이다.

문화경영, 예술경영, 문화콘텐츠 같은 생경한 이름의 학과들이 대학에 들어서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특히 문화 콘텐츠라는 이름의 학과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명칭이다. 그 만큼 시간을 놓치기 전에 절실하게 도입되어야 했던 가치인지도 모르겠다.

'융합 학문의 꽃'이라는 찬사가 있는가 하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냉소도 함께 존재하는 문화콘텐츠의 운명은 일단 그 확장성이 대단할 것이라는 것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지점에 있는 것 같다.

오히려 학문 영역에서의 문화콘텐츠보다는 현장성에서의 강점이 훨씬 강력하지 않을까 예상이 된다. 그래서 학문이 영원히 현장을 따라갈 수 없는 현상에 결코 종지부를 찍을 수 없을 것이라 조심스레 예견해본다.

얼마 전 지방에서 개최된 국가행사를 마치고 담당자들의 한탄이 이어졌다. 국가행사를 하다보면 문화행사는 필연적이다. 중앙에서는 부대행사이지만 참여하는 예술단체의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예술행위이다. 이런 인식의 차이에서 대부분의 경우 행사 내내 불협화음을 일으키기 일쑤이다.

어쩌면 지금의 고급 공무원 선발체계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전혀 콘텐츠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되어 있지 않은 중앙부처의 담당자가 전문가 영역의 문화콘텐츠를 자의적으로 다루면서 발생하는 파열음은 단순히 행사의 성공여부를 떠나 이것 자체가 문화콘텐츠 육성의 저해 요소이면서 한편으론 문화콘텐츠학과가 발전적으로 정착해 나가야 될 당위인 것이다.

"문화콘텐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공적 영역에서의 문화경영에 종사하고 싶다"는 자기소개서 속에 있던 그 학생의 각오가 특별히 반갑다.

엘빈 토플러 기획 '제 3의 물결'이 대한민국에서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되기 위해선 문화콘텐츠 관련한 정책과 인력양성에 있어서 좀 더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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