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詩人(자료: 거제향토문화사)

둔덕면 점골에 있는 두 개의 바위는 두드리면 무당이 굿을 할 때 내는 소리처럼 하나는 장구소리, 하나는 징소리와 비슷하다 해서 무당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무당바위가 있는 아랫마을에 참새 한 마리가 물통에 빠져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 때 시집 온지 며칠 안 되는 박영감네 며느리가 그 참새를 건져내어 살려 주었다.

참새는 오들오들 떨면서 "새각시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꼭 갚겠어요" 하면서 날아갔다.

박 영감네 집은 대대로 무당 집안이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불러 앉혀놓고 말하기를 "내가 늙어서 더 이상 무당 노릇을 할 수 없게 되었구나. 무당노릇이라도 하지 않으면 굶게 생겼으니 이제부터 네가 해야겠구나" 하며 며느리에게 무당이 되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며느리는 앞이 캄캄했다. 왜냐하면 며느리는 무당이 되고 싶지도 않았고 그동안 무당공부도 하지 않아 점을 칠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해질 무렵 며느리가 뒤뜰에 나가 바람을 쐬고 있는데 언덕 위 배나무 가지에서 참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 와서 새 며느리의 어깨 위에 앉았다.

참새가 말하기를 "저는 각시님이 살려준 참새예요. 나는 죽어서 참새귀신이 되었어요. 나는 각시님을 훌륭한 점쟁이로 만들어서 부자가 되게 할 테니 입을 '아' 하고 벌려보세요" 하고 말하자 며느리는 시키는 대로 입을 벌렸다. 그러자 참새가 며느리의 입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 때부터 박영감댁 며느리는 '참새무당'이 되어 점을 칠 때마다 점을 잘 친다고 소문이 마을에서 마을로 퍼져 나갔다. 점을 잘 친다고 소문이 나자 먼데 있는 사람들까지 찾아와 북적거렸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며느리 무당은 돈을 많이 벌어 큰 부자가 됐다. 며느리 무당은 낡은 오두막을 헐어버리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지었다. 날마다 돈은 셀 수 없을 만큼 들어왔다.

돈이 많아지고 참새무당은 거만해지고 욕심도 많아졌다. 점을 보는 것도 신중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보거나 남을 곤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건넛마을에 사는 김 진사 집에는 4형제 도련님이 살고 있었다. 글깨나 읽은 집안이라 무당을 아주 천박하게 여기고 무시하자 김 진사댁 도련님을 골려줄 생각을 했다.

하루는 김 진사댁 둘째 도련님이 찾아와서 사연을 말하기를 "우리 아버님께서 내일 모레 서울구경을 가시는데 우리 4형제 중에서 막내만 데리고 간다고 하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물었다.

참새무당은 이 말을 듣고 "참새야 어인 일로 막내만 데리고 가느냐?" 하고 참새에게 물었다. 그러자 참새귀신은 "막내가 몸이 약해서 보약을 지어 주려고 데리고 간다" 하고 답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무당은 엉뚱하게도 "모든 재산을 막내에게 주기 위해서 그런다"고 했다.

김 진사댁 삼형제는 재산을 막내에게 모두 줄 수 없다며 막내를 죽이고 만다. 김 진사가 서울로 떠나는 날 막내를 찾아보니 보이질 않았다. 김 진사는 "막내 녀석이 몸이 약해서 유명한 한약방에 데리고 가서 보약이나 지어 주려고 했더니 어디로 갔담"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아들들이 들었다.

참새무당에게 속은 것을 안 삼형제는 이번에 무당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 다음날 삼형제는 무당을 묶어 가마에 태워 동생을 죽였던 곳으로 데리고 가서 죽여 버렸다.

무당이 죽자 참새 한 마리가 무당의 입에서 나와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리고 무당이 죽은 자리에 바위가 솟아올라 지금의 무당바위가 됐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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