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 김미광 거제중앙고 교사
얼마 전이었다. 카톡으로 낯선 문자 메시지 하나가 왔다. "선생님, 저 15년 전 00고등학교 선생님 제자였던 A입니다."

'A'라고? 기억한다. 나는 단번에 그 이름을 기억했다. 아주 선명하게. 나로 하여금 교사로서 처절한 절망감과 좌절을 느끼게 했던 그 이름, 'A'를 어찌 잊으랴. 그 학생은 내가 경기도 모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우리 반이었던 학생이었다.

그는 모든 교사가 손을 놓은 전혀 통제가 안 되는 학생이었다. 등하교 시간은 따로 없었고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했다. 교실에서까지 담배 피우는 것은 기본이고 입에는 욕을 달고 다녔으며 눈빛에는 아무도 말릴 수 없는 반항기와 '삐뚤어질 테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온 몸으로 뿜어냈다.

그 아이는 주변 아이들을 오염시켰고 그 아이 하나를 지난 학년 동안 교사들이 방치함으로 마지막 학년을 맡은 나는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교사의 말은 절대로 안 통한다는 것, 그 아이에게서 교사의 권위는 개나 물어가라는 것이었고 손가락 하나라도 그 아이에게 댔다가는 바로 경찰에 신고한다는 식으로 교사에게 협박을 가했다.

그 당시 그 유명한 이해찬 교육부장관이 학교에서 모든 매와 체벌을 금지함으로서 우리는 그 녀석에게 꿀밤 한 대도 쥐어박지 못하고 그 패악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어디 교사들 뿐인가. 그 녀석이 패거리를 모아서 그 패거리들이 학교에서 벌인 악행들, 같은 학교에 다니며 고스란히 피해를 당했던 다른 학생들도 우리는 지켜주지 못했다.

이 쯤 되면 부모의 말도 안 통하는 것은 당연지사. 부모를 불러 얘기해도 서로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아이와의 싸움에서 지친 내가 생각해낸 유일한 타협점은 그 아이가 무슨 짓을 해도 그냥 봐주고 칭찬해주는 것이었다. 

녀석이 수업시간에 행한 어처구니 없었던 행동 중의 하나, 녀석은 커트 칼을 길게 빼서 책상위에 다섯 손가락을 벌려 그 사이로 칼을 왔다갔다 하며 찍어 댔다. 수업시간에 하지 말라 하면 바로 칼을 던질 기세라 뭐라 말도 못했고 다른 아이들도 그 녀석이 책상 위에 칼을 찍어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참다 못한 내가 녀석에게 가서 그만하라 했더니 녀석이 칼을 내 얼굴에 들이댔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학교를 때려치우고 교육부장관에게 가서 따지고 싶었다. 아무런 대책 없이 체벌만 금지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옳은 것이냐, 한 명 살리자고 나머지 선량한 학생들까지 나쁜 물이 들게 두는 것이 제대로 된 교육방법이냐, 대체 어쩌자고 교육을 이 지경이 되도록 몰아갔냐.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시대가 되면 우리나라는 망한다는데 한 표 건다.

그러니 어찌 잊으랴. 그 이름을. 그런데 녀석이 15년이 지난 후에 짧은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선생님, 고등학교 때 제가 너무 말 안 듣고 말썽 피워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이 말 한마디에 나는 참 일관성도 없이 15년 해묵은 감정이 수그러드는 것을 느낀다. 15년이 지나도 몸서리쳐지는 그 이름에 대한 기억이 은근슬쩍 바뀐다. 그래, 녀석이 나쁜 길로는 가지 않았구나. 안도감마저 든다.

나는 훌륭한 교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안 그만두길 잘했다. 이런 날도 오는구나. 눈물이 났다. 녀석도 30대 중반을 넘으니 사람이 되는구나. 그리고 정말 다행인 것은 그 녀석들이 어른이 되는 시대가 되었어도 우리나라는 아직 안 망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변하고 발전한다는 것. 그렇게 죽어라 속 썩이던 아이가 이렇게 15년이 지나서 비록 한 줄이지만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 이 맛에 나는 아직 교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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