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문 칼럼위원

▲ 종문 대원사 주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을 맺으며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인연들은 우리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한다. 우리들의 삶의 행복과 불행은 수많은 인연 속에서 연속된다.

이러한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인연의 뿌리는 어디서 오는 걸까? 옛말에 "잘 되면 내 탓이요, 못되면 조상 탓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잘못 전해져 오는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만큼 이기주의적 사고가 깊이 뿌리 박혀있는 말이다. 행복한 삶도 나의 근원이요. 불행한 삶도 내가 뿌려 놓은 씨앗의 결실이다.

우리들 삶의 중심에는 물질이 존재한다. 이러한 색(色)과 색의 만남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탐욕은 만족을 모른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해도 부자가 되는 사람은 드물다. 설령 부자가 됐더라도 그 부를 지키려고 근심 걱정이 하늘을 찌른다.

이러한 고통이 모두 탐욕의 인연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도 그 이기주의적 탐욕의 인연을 끊으려고 하지 않는다.

근심과 고통의 인연은 사람과 물질 때문이요, 근본은 '나' 때문이다. 나의 사람, 나의 물질이라는 인연에 집착하면 근심하고 괴로워한다. 즉 괴로움의 실체는 '나'인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물질 나의 사람이란 무엇일까. 오온(色,受,想,行,識)은 공하다고 했다. 물질도 사람도 인연으로 함께 하다가 인연이 다하면  멸하는 것인데, 어리석음의 아상과 아만에 빠져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애(我愛)에 빠진 갈애(渴愛)로 인한 고통의 인연으로 탐욕을 일으키고, 나의 욕구에 거스르면 분노하고, 신경질로 인한 어리석은 행동으로 소중한 나를 고해(苦海)속으로 던져버린다. 이러한 고해, 고통과 괴로움의 바다에서 헤어 나오려면 올바른 인연을 바로 보아야 한다.

세상의 인연이란 꿈같고, 뜬 구름 같아 좋을 때는 형제부모요, 친구친척이라 하지만, 내가 무능하면 문전성시하든 인연도 모두가 멀어진다. 이것은 유한한 인연이요, 지혜의 무한한 인연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다.

만공선사는 "세계일화"다 했다. 온 세상을 한 송이 꽃으로 보는 사고, 행동이 불변의 인연인 것이다. 너와 내가 하나요, 만 중생이 다 한 몸이요, 세계만방 모든 나라가 하나다. 미망에 빠진 사람, 어리석음에 빠진 사람은 온 세상이 한 송이 꽃인 줄 모른다.

그래서 너와 나를 나누고, 내 것, 네 것을 가린다. 사람을 적이다, 동지다 나누며 서로 빼앗고 죽인다. 그러나 미망의 어리석은 인연에서 벗어난 사람은 다르다.

지혜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면 모두가 한 몸이다. 흙이 있어야 풀이 있고, 부모가 있기에 자식이 있고, 이웃과 이웃이 있음으로 한 송이 꽃이다. 이 생각 하나만 바로가지면 온 세상이 평화롭다.

그렇지 않으면 시비와 다툼과 살육이 끊임없이 생긴다. 이것이 아비지옥이다. 이런 듯 일체만물의 인연을 정견, 바른 지혜의 마음으로 대하면 온 세상이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다고 했다.

오늘은 어제의 인연에서 비롯되었고 오늘의 인연은 내일의 삶을 만들어 간다. 참된 삶은, 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말과 행동을 하게 되면 행복은 그를 따른다.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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