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詩人(자료 : 거제향토문화사)

어떤 총각이 나이가 차 장가를 가게 되었다. 그런데 여러 사람과 함께 혼인하러 가는 중에 난리가 일어났다. 신랑은 함께 가던 아버지와 친지 그리고 친구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 피난 갈 준비를 하게하고는 혼자서 예장(禮狀)을 가지고 신부집으로 갔다.

이 난리통에 신부집인들 무사할리 없었다. 신부가 사는 마을에 들어서자 온 동네가 텅텅 비어 있었다. 신랑은 신부집으로 갔지만 신부집 역시 모두 피난을 갔는지 조용하기만 했다.

"안에 누구 계십니까?"

몇 번을 부르자 아내가 될 처녀가 신부예복을 입은 채 나왔다. 신랑은 이름이 쓰인 예장을 내밀어 보이자 처녀는 자기 남편 될 사람임을 알고 자초지종을 말했다. 마을 사람들과 부모님들은 모두 산으로 피난을 갔다고 했다. 처녀는 신랑이 오면 함께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우리도 빨리 떠나자고 재촉했다.

그리고는 막 떠나려고 하는데 신부가 옷장에 넣어둔 가락지를 가져와야 한다면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옷 보따리를 신랑에게 넘겨주면서 이 안에 있는 옷은 쌀가루로 만든 것이라서 급할 때 식량이 된다고 말해 주었다.

신부가 가락지를 가지러 들어가고 나서 신랑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신부가 나오지 않았다. 빨리 피난을 가야 하는데 신부가 나오지 않자 신랑은 기다리다 못해 신부를 찾으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에 웬일인가? 신부가 있는 방문을 열자 신부는 목을 매어 죽어 있었다. 신랑은 얼른 끈을 풀어 신부를 내려놓았다. 신랑은 너무 급해 신부를 장사 지내지도 못하고 눕혀만 놓은 채 산으로 피난을 갔다.

신부가 가리켰던 산에 갔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동굴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양식과 옷가지, 그리고 사람이 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신랑은 거기서 몸을 숨기고 살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먹을 양식이 떨어졌다. 신랑은 신부가 쌀가루로 만든 옷을 조금씩 떼어먹으며 버티었다. 이제 쌀가루 옷조차 얼마 남지 않았는데 산적같이 건장한 놈이 오더니

"너, 뭐 먹냐?"

하고 물었다.

"먹을 게 없어서 옷을 먹고 있습니다."

했더니 자기도 며칠을 먹지 못해 굶었다며 험악한 표정으로 빼앗아 가져갔다. 덩치가 큰 놈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언덕 아래 낭떠러지에 어마어마하게 큰 칡넝쿨이 있는데 그것만 캐면 한 열흘은 먹을 수 있는데 캘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힘이 세어 보이니 그 칡이나 캐러 갑시다."
"좋아, 그럼 가보자"

총각은 도적 같은 놈을 앞세우고 낭떠러지로 갔다. 놈이 낭떠러지에 있는 칡을 캐기 위해 엎드렸다.

"내가 붙잡아 드릴 터니 내 손을 잡으세요"

놈이 신랑의 손을 잡고 낭떠러지에 몸을 내리는 순간 손을 놓아버리자 놈은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신랑은 조금 남은 쌀가루 옷으로 며칠을 견디었다. 이제 난리도 끝나고 마을로 내려왔다. 아깝게 죽은 신부를 묻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신부집을 찾았다. 신부가 될 처녀는 그때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너무나 불쌍해서 신랑은 땅을 치며 통곡을 하자 그 소리에 신부가 놀라 깨며

"당신 오셨어요. 내가 너무 잤나 봐."

하며 반갑게 맞았다. 신부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난리통에 함께 있으면 들킨 염려가 있고 또 식량도 아끼려는 지혜였다. 둘은 마을을 모두 차지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