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철봉 칼럼위원

▲ 문철봉 통영YMCA 사무총장
동네가 마을 가꾸기 사업을 시작하며 여러 변화가 시작됐다. 가파른 언덕길에 계단이 놓이고 그림이 그려졌다. 피아노 계단이란 멋진 이름도 붙여졌다.

발도 들여 놓기 힘들던 뒷동산에도 일방통행 도로와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가로수와 관상수는 물론이고 잔디가 심겨지고 예쁜 화단들도 생겼다. 큰길가에는 마을가꾸기 전문가들에게 자문하고 문화 예술인들이 참여 제작한 멋지고 재미난 조각품들도 새워지고 간간히 벤치도 놓여졌다.

이렇게 가꿔져 가는 동네에서 진즉 없어져야 할 괴물이 길 어귀에 웅크리고 있다. 헌데 이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하다. 웅크리고 도사려 있는 것만이 아니라 앞의 저런 여러 가지 새로운 변화들을 집어삼켜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으니 낭패다.

이 괴물이 자리한 곳은 전화박스 옆이다. 괴물은 전화박스를 가운데 두고 창작의자의 반대편에 웅크리고 있다. 무심히 지나면 눈에 뜨이지도 않는다. 이것은 도로안전용 반사거울대에 붙어 있는 쓰레기 배출 안내표지 판 아래 쌓여 있는 쓰레기다.

어느 날, 여기에 파라솔을 치고 동장이 자리하고 앉았다. 한 낮인데도 수북이 쌓여 악취를 풍기는 이 괴물과 누가 이기나 보자고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어? 동장님, 아입니까? 어째 여기 나와 계십니까?" 하는 88통장 아주머니 손에 20ℓ 주황색 쓰레기봉투가 들렸다.
"아니, 통장이 이 낮에 쓰레기를 들고 나오면 우짜요? 여 이거 안보요? 밤에만 내놓으라고 하는 거. 마을 가꾸기 한다고 길포장하고 나무데크 깔고 벽 칠하고 그림 그리고 조각상 만들어 놓으면 뭐하요? 이래 쓰레기가 넘쳐나고 악취가 진동을 하는데."

동장의 지적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쓰레기를 뒤로 감추다 "삽짝 나선 길에 늘 하던 버릇이라서…." 말꼬리를 흐린 통장은 홱 돌아서 왔던 골목으로 달아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할머니가 주황색 종량제 봉투도 아닌 검정비닐봉투에 쓰레기를 가득 넣어 들고 나온다.

"할매요, 낮에는 쓰레기 내 놓으면 안됩니더. 저녁에 해지면 갖다 놓으시소."
"이적지 아무 말 없더만 와 그라노? 나가 다른데 놓는 것도 아이고, 여가 쓰레기 모아서 갖다 놓아라 한데 아이요? 그는 누요? 뭐하는 사람인데 여서 하라마라 하요?"
"제가 동장입니다. 동네 좀 깨끗이 해서 누가 봐도 기분 좋은 동네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낮에 쓰레기를 내놔가지고 되겠습니꺼? 여름이라 외지 사람도 많이 올낀데. 쓰레기는 해진 저녁부터 새벽에 청소차 오기 전까지만 내놓아야 합니더. 주말에는 밤에도 안 됩니더. 월요일 밤에 내놓으시소."

이렇게 돌려 세우기를 며칠 반복하는 동안 마침내 냄새나고 지저분하던 괴물이 꼬리를 감추는 듯했다.

동장이 철수하고 사나흘 지나 공중전화박스 앞을 지나던 88통장이 기겁을 한다. 이전보다 더 많은 쓰레기가 쌓였기 때문이다. 마치 숨겼다가 왕창 내 놓은 것만 같다. 통장은 동사무소로 달려가 "통장인 내가 그동안 잘못한 것도 많으께 인자는 동장님 대신 내가 막아 지킬라요"라며 동장에게 파라솔을 내놓으라 해서 받아든다.

이렇게 며칠을 이전 동장이 하던 것처럼 통장이 보초를 섰다. 몇몇에게는 "통장 니가 와 카노? 동장도 아인기"라는 싸잡이를 당하면서도 막아섰다. 이래서 또 지겨운 괴물 쓰레기 더미를 치워냈다.

그런데…. 88통장, 며칠 친정어머니 병수발하고 오니 공중전화 박스 옆, 쓰레기 배출장에는 보란 듯이 쓰레기가 쌓였고 또 악취가 진동을 한다.

'이건 아니지'라고 악다문 이빨 사이로 어쩔 수 없이 빠져나오는 외마디 "아~~쫌, 동네 사람들아, 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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