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기(名器)
명기(名器)
  • 거제신문
  • 승인 2015.08.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수천만원대 바이올린 활을 둘러싼 연주자들 사이의 진실 공방이 법정까지 이어져 화제가 되고 있다.

프랑스산 명품 '사르토리(sartory)' 활을 빌려줬다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외국인 수석연주자와 그런 활을 빌린 적 없다는 한국인 동료의 다툼에서 법원이 빌려줬다는 사람의 손을 들어주며 3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서울시향의 단원 A씨는 자신에게 잘 맞는 바이올린 활을 찾으려고 악기사나 동료 단원들에게서 여러 종류의 활을 빌려 사용해 보던 중, 2011년 외국인 수석 단원인 B씨에게도 두 개의 활을 빌렸다.

A씨는 며칠 뒤 싼 가격대의 활을 돌려주면서 빌린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양 했고, B씨는 자신은 '사르토리' 활을 빌려줬는데 엉뚱한 게 돌아왔다며 A씨를 횡령 혐의로 고소하고 민사소송도 냈던 것이다.

법원은 2년 넘게 심리한 끝에 빌려준 활이 '사르토리'가 맞다고 결론을 내고 3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예전에도 간혹 악기를 분실하거나 도난당한 사건들이 화제가 되곤 했는데, 항상 화제의 중심은 분실과 도난 자체가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악기 가격에 초점이 맞춰지곤 했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은 활 값이 3천만원이면 도대체 악기값은 얼마란 말이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듯하다.

바이올린은 대개 몸통의 길이가 35.5cm에 불과하며 모양새도 단순해 보이지만 70개의 세부 요소로 이루어진 정밀하고 섬세한 목기구이다. 몸통의 앞판과 뒤판은 모두 볼록한 아치형으로 되어 있고 앞판과 뒤판을 이어주는 옆판은 대개 3cm를 기준으로 아래 몸통보다 위 몸통이 슬림해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주로 쓰이는 나무로는 앞판은 부드러운 유럽가문비나무, 뒤판과 옆판은 단풍나무, 목에서부터 브리지로 향해있는 지판은 흑단으로 만들어 진다. 

이번에 화제가 된 활도 본체만큼이나 연주의 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고급활은 탄력이 좋은 브라질산 목재 페르남부쿠를 주로 쓴다고 한다. 활털도 마찰이 잘 일어나야 좋은 소리가 나기 때문에 투수들이 주로 사용하는 송진을 쓰는데, 바이올리니스트도 자기가 선호하는 송진을 발라가며 음색을 조정하는 것이다.

이런 메카니즘을 가진 바이올린, 아니 첼로나 비올라 같은 현악기의 가격은 어느 정도일까? 연습용으로 쓰이는 현악기들은 취미로 다루는 기타 가격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이른바 명기로 불리는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같은 경우 20~30억 정도의 가격대가 기본적으로 형성돼 있다.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좀 더 우위에 있는듯하지만 경매가는 희소성에서 앞선 과르네리가 210억원 정도로 더 센 기록을 가지고 있다.  

두 명기에 대한 연주자들의 표현도 재미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를 각각 '고고한 귀부인'과 '솔직한 농부'로 비유하며 "둘 다 사용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인생의 맛이 느껴지는 과르네리만 사용한다"고 했고 백주영은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이미 가진 완벽한 음색에 나를 맞춰가야 하지만, 과르네리는 조금 덜 다듬어진 보석 같아서 내가 원하는 소리를 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거장 아이작스턴은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사랑해야하고 과르네리는 강간해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비유를 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서 동남쪽으로 70㎞ 정도를 달리면 '크레모나'라는 작은 도시가 있는데, 인구도 몇 만이 되지 않고, 자전거 타고 1시간이면 도시 전체를 다 둘러볼 수 있는 이 도시가 스트라드바리우스·과르네리 그리고 그들의 스승 아마티 같은 명장들을 배출시킨 본고장이다. 16세기 중반에 시작된 크레모나의 악기제조 전통은 공방과 기업의 형태로 지금도 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 명기의 비밀을 풀기 위한 시도들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주장들 중에선 당시 유럽에 불어 닥친 '소빙하기'의 혹한으로 인해 가문비나무의 구성이 다른 때보다 훨씬 타이트하게 형성되어 재료 자체가 좋고 니스칠 아래에 얇은 화산재성분의 딱딱한 층이 존재하고 있다는 정도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무리 명기라도 이렇게 비싸서야 세상의 모든 연주자들이 엄청난 부자가 아닌 담에야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그래서 국내의 금호문화재단이나 미국의 '바이 앤 푸시' 같은 곳에서 악기은행을 운영하며 소장자와 연주자를 연결해 주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들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