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길남 경남문학평론가협회 회장

▲ 하길남 경남문학평론가협회장
글을 한 편 써서 부쳐야 할 텐데 하고 제목을 썼다. 그때, 아내가 '그럼, 이제 반을 썼군요'하고 웃는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말이지'하면서 정색을 한다. 물론 이 말은 웃자는 이야기다. 사실은 여자 편이 모든 면에 있어서 남자보다 더 섬세해서 매사에 신중하다. 매사에 남자는 목표지향형이고, 여자는 상황지향형이라고 했다. 옷 한 벌을 살 때 남자들은 6분이 걸리고 여자들은 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옛날 원시시대 남자들은 사냥을 가서 산 돼지 한마리라도 발견하여 활을 쏘아 잡으면 그의 임무는 끝나고 만다. 그러나 여자들은 들에  나와서 나물이라도 뜯게 되면 한두 시간은 족히 걸리게 마련 아닌가. 어디 나물 한두 포기로 반찬을 만들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여성들은 목표보다 오히려 그 과정이 중요한 셈이다.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두 시간 후딱 가버리고 만다. 옆에서 전화를 걸 때 들어 보면 생활하면서 느낀 이야기, 그 낙수(落穗)들이 진을 치게 마련이 아닌가. 이를 극단적으로 분류해 본다면 남자는 살기 위해 먹는 쪽이 될 것이고 여자들은 먹기 위해 사는 쪽이 될는지 모를 일이다.

사실상 지금은 일상을 팔고 있는 시대라 해도 좋을 것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삶의 작은 순간들이 드라마, 인터넷 플러그 등을 통해 대중을 열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손에 이끌려 여탕 입구까지 갔다가 어린이가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모습 등은 잔잔한 웃음을 자아낸다. 바로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이른바 산고라는 긴 시간 동안을 인고해야하는 잠재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들판에 풀 한 포기가 자라기 위해서는 태양이 쪼이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이른바 광합성의 긴 과정을 겪어야 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여성은 모성, 그 사랑의 헌신자가 되는 것이리라.

그래서 성모마리아상까지 울었다지 않던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의 베트남계 성당에 있는 성모마리아상이 붉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물을 닦아냈지만 1주일 후 다시 왼쪽 눈에서 붉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적을 보기 위해 성당에 몰리고 있다고 새크라멘토 AP 연합뉴스는 보도했던 것이 아닌가.

일평생 동안 소록도에서 나환자들과 같이 살다 이승을 떠난 마리아 수녀, 마가레트 수녀 등은 사후에 편지 한 장밖에 남겨놓은 것이 없었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 68세에 운전면허증을 딴 할머니도 인생승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디 그뿐인가. 근대 간호의 어머니 나이팅게일은 '정의는 늘 행복이고, 행복으로 이르는 길' 이라고 했다.

사실상 여성은 두세 가지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신문을 보면서 가족 이야기를 하고, 다리미질을 하면서 TV를 보고, 전화도 받는다. 그러나 남성들은 신문이나 TV나 신문 등을 보면서 아내의 잔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제2차 대전 후 일본을 잿더미에서 구한 것은 동경대와 이와 나미 문고文庫 그리고 어머니라고 했던 것이리라.

이승헌 선생이 지은 '우리말의 비밀'이란 책을 보면 엄마의 '마'는 '처음', '참됨', '옳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적고 있다. 우리 어머님은 해방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나라를 위해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유언을 나에게 남기셨다. 그래, 어머님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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