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 윤성원 거제불교거사림 2기 학생회장
태어나서 살고 죽고, 힘들고 편안하고, 행복하고 불행하고, 춥고 덥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부처님의 삼보 보배란 뜻으로 생각해 본다.

불보는 일체 존재와 일체 생명의 근원된 진리이다. 이 위없는 진리가 부처님 법이다. 우리들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따라 배우고 수행하며 닦아가는 생활방법이 있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사회 삶에 법문이다. 올바른 행동에 사회구조를 생각하고 후세 만대를 생각하는 행동을 꼭 실천 해야 한다.

잠시의 덕과 잠시의 명예 때문에 삼보행을 버리면 후세까지 불행할 수 있다. 삼보행은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깨닫고 해탈하면 번영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의 가르침을 성실하게 닦아가며 사회에 진리의 소식을 비춰주며 바른 소리에 손을 흔들어야 한다. 이처럼 삼보는 우리사회의 본분을 회복시키고 이 사회에 참된 발전과 보람을 가져다주는 근거가 된다.

우리는 좋은 사회를 위해 행하는 법문을 믿고 배우고 실천해 진리의 길로 들어가야하며 우리의 본분을 회복해 참된 인간의 완성을 이루는데 노력해야 한다. 법문이 글로만 있으면 종교일 뿐이다. 범부로서 진리에 이르는 길과 닦아가는 방법에 대한 부처님 말씀은 우리가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 중심에 있다.

조금 부족한 것을 닦아가고 사람의 소질과 성격·생활 차이에 따라 닦아가는 방법은 많다. 마치 높은 산에 오를 때 출발처가 다름에 따라 산에 오르는 길이 다름과 비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천성락을 누리게 하는 법문이나 생사윤회를 벗어나 해탈에 이르는 법문, 탐욕과 집착을 버리고 밝은 지혜를 얻는 다양한 법문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욕심 때문에 만족하는 일이 없다. 남은 잘돼있고 나만 불행하다는 불평을 한다. 부처님의 8만4000 법문에도 있다. 사람의 성격이나 미혹의 상태가 천차만별이므로 부처님 법문도 우리의 행동에 따라 답이 다르게 표현 될 것이다. 8만4000 법에 답을 가지고 행하면 우리에게 온갖 즐거움을 주고 마니주와 같아서 온갖 소망을 채워주고 미혹을 깨뜨려 불보를 이루게 할 것이다.

삼보중 행이 중요하지만 행을 위해 우리에게 가르치는 승보도 있다. 승보는 한마디로 대답한다면 부처님 법을 배우고 닦는 부처님 제자를 말한다. 사회에서 기준을 몰라 헤맬 때에 대한 표준이라 할 것이다. 항상 흔들림 없이 지혜롭고 위덕이 있으며 사람들의 의지가 되며 사회를 밝혀가는 빛을 내기 때문에 세간에 없는 보배라 할 수 있다.

개인의 생각에 큰 소리 치며 주장 하는 사람에 비해 승보는 항상 기준이 되고, 기준에 흔들림 없이 삼보행을 실천 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뿐이다. 사회존엄이 삼보행을 신앙하는 뜻이기도 하다.

신앙은 남을 믿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회 진리를 바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행동 하는 것이 부처님의 행에 움직이는 큰 뜻이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지닌 인간의 삶을 추구하고 사회 모든 것을 보존하고 지킬 의무가 있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은 어디서나 우주의 최고 절대성을 가진 자유성을 갖는다. 작다고 크다고 힘없다고 행에 차별은 없어야 한다. 따라서 타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평등한 사회 자유를 가진 사회의 존재이며, 스스로 만유의 상대성으로 변화할 수 있는 부처님처럼 성품을 가지고 있어 주위에 잘못을 지적하고 잘 된 것에 개인의 생각으로 표현하는 것에 행을 잘못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행에 진리를 불성(佛性)이며 진여(眞如)라고도 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진리는 우리의 진면목이며 일체 존재의 근원이라 행을 바르게 가야한다.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아 진리 본연인 참 자기를 회복해 참된 지혜와 덕성을 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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