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에 사는 어느 양반이 좋은 갓을 쓰고 거제도로 구경을 왔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구경을 하던 중에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쓰고 있던 갓이 날아갔다. 쫓아가면 잡을 수 있었지만 양반 체면에 뛸 수는 없고 해서 느릿느릿 갓을 잡으러 걸어갔지만 갓은 먼 바다로 날아가 빠지고 말았다.

그 당시 갓은 양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고, 잘 만들어진 것은 값이 꽤 나가기 때문에 귀하게 여겼던 양반의 필수품이었다. 바람에 갓을 잃어버린 양반은 다짜고짜 원님이 있는 동헌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고을 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원님 보시오. 내가 이 고을 앞을 지나가는데 바람이 불어서 갓이 날아갔소. 이 고을 바람 때문에 갓을 잃어버렸으니 이 고을에서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아무 말 말고 갓을 물어내시오."

양반이 떼를 쓰는 것이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꾀 많은 고창녕 원님이라해도 이럴 때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오시오. 그동안 갓을 찾아 놓지요"

하고 양반을 돌려보냈다. 원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 궁리 저 궁리하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원님은 급히 이방을 불렀다.

"이방은 지금 당장 바닷가 마을로 가서 어장하는 사람들에게 내일 아침 몇 시까지 동헌으로 다 모이라고 전하게."

누구의 명이라고 거절할 수 있는가. 다음날 아침이 되자 어장하는 사람들도 모두 모였고 잠시 후 갓을 잃어버린 양반도 자리에 함께했다. 그때 원님이 하는 말이

"한양서 온 이 손님이 어제 바람에 갓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이 양반이 잃어버린 갓을 너희들이 물어줘야겠다."
"바람에 날아간 갓을 우리가 왜 물어줘야 합니까?"

어장하는 사람들이 항의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엉터리 판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원님은 차근차근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엊그제 바람 불지 말라고 바다에서 제사를 지낸 적이 있지?"
"예, 있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갓 값을 물어줘야 한다는 것이네. 바다에 바람이 불지 말라고 제사를 지내고 나니 모든 바람이 육지로 올라와 이 분의 갓을 날아가게 한 거야. 그러니 너희들 탓이 아니고 누구의 탓이란 말인가?"

원님의 말이 억지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장 사람들은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갓 값을 물어줄 수밖에 없었다.

윤일광 詩人(자료: 거제향토문화사)

TIP. 고창녕 전설의 의미 (정상박·동아대학교 명예교수)
실존 인물 고유(高裕)가 훌륭한 명관이었음은 틀림이 없다. 그래서 고창녕(高昌寧) 전설을 들으면 어디까지가 실화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지 좀처럼 분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과거의 민중들은 창녕현감을 지낸 고유의 행적을 바탕으로 그들이 바라는 명관상(名官像)을 투영해 수많은 고창녕 일화를 형상화했음은 사실이다. 백성과 정의를 위해 상관에게도 굴하지 않고 범죄사건을 기발하게 해결하고, 명쾌하며 공정한 판결을 해 억울한 백성의 한을 풀어주는 현감 고창녕 이바구를, 민중들은 이야기하고 들으면서 명관 출현의 희망을 잃지 않고 고달픈 생활을 달랬다. 그리고 그들은 아들과 손자들에게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나이 어린 고창녕 이야기를 하여 꿈을 심어주고 슬기를 깨우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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