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표절사태로 출판가에 찬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그 동안 보아오지 못했던 패턴의 책 한권이 서점가에 조용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라는 책인데, 피아니스트로 잘 알려진 손열음이 작가로서의 재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손열음의 글솜씨는 사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중앙일보에 5년간 칼럼을 게재하면서 지면을 통해 그녀의 깊고 넓은 혜안과 통찰로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갖춰야 할 품세 같은, 묵고 또 묵어야만 한 마디 훈수라도 가능한 영역까지 냉철하고 세련된 필치로 충성도 높은 독자층을 만들어 냈다.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로 진입했다는 소식과 함께 일신홀에서 기자간담회를 겸한 대화를 곁들인 연주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설렜다.

손열음의 피아노 연주는 지금껏 많이 보아온 터라 그녀의 조금은 개인적인 내용과 캐주얼한 형식으로 꾸며질 그 날의 무대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맞지 않아 가 보진 못했지만 보도된 기사를 보면 "지금까지 클래식 관련 책들은 주로 음악전문가가 밖에서 보고 쓰는 이야기였지만 이번 책은 직접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안에서 밖을 내다본 것"이라며 작가의 변을 남겼다고 한다. 

손열음을 처음 본 것은 2002년도 통영국제음악제가 처음 개최되던 해였다. 86년생이니 당시 기껏 열여섯 살이었는데, 재능 있는 연주자들을 후원하기로 유명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성용 명예회장의 손에 이끌려 광주시향과 그리그협주곡을 연주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 무대는 손열음에게 일종의 데뷔무대와 같은 성격을 띠었던 것 같다. 아직 앳된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무대를 압도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박성용 회장은 손열음이 정말로 대견했던 것 같다. 이후에도 금호문화재단의 기획으로 로린 마젤이 이끌던 뉴욕 필과의 협연도 만들어 줬으니 말이다.

책이름에 왜 하노버가 나올까 궁금할 법 한데, 손열음은 원래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대한민국 현실에 비추어 보면 그다지 음악영재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나가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던 것 같다.

본인의 책 속에도 나오는 풍경이지만  어느 늦은 밤, 할머니가 방바닥에 멍하니 쭈그리고 앉아 조그만 트랜지스터로 들으시던 옛날 트로트 음악에 대한 단상, 원주 시내의 아파트에서 작은 개울과 꼬부랑길을 지나 외할머니 집으로 가는 동안의 풍경들이 그녀만의 감수성으로 잘 묘사되고 있는데, 이런 시골 소녀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김선욱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김대진교수의 가르침을 받아 젊은 대가의 반열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의 연마를 이어간 곳이 독일의 하노버이고 사실 요즈음의 '하노버'는 세계의 재능 있는 음악학도들이 모여 드는 세계음악의 보고이다. 이런 하노버가 좋아서일까. 손열음은 10년째 이 도시에서 아리에 바르디에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어느 매체에서의 인터뷰를 보면 농담반 진담반으로 공부하는 신분이 좋아서 졸업을 안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손열음이 또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10년 전쯤에 칼 리히터가 하프시코드로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고 완전히 빠졌어요. 1979년 도쿄 실황 음반이었죠. 그때부터 '나도 해봐야지'라는 꿈을 꿨어요. 물론 기술적으로는 많이 어렵죠. 하프시코드는 셈여림을 조절할 수도, 비브라토를 표현할 수도 없어요. 페달도 물론 없지요. 또 제 근육은 이미 피아노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어요. 하지만 10년 동안 기다린 꿈이었어요. 예술가는 그래야 한다고 믿어요."

그렇다. 손열음은 8월14일부터 시작되는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피아노의 할아버지 격인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나선다.

2007년 그녀가 20대 초반일 때 "음악에 대한 우리의 해박한 지식만큼 우리의 연주와 감상을 방해하는 것이 또 있던가. 앞뒤 분간 못하는 분석만큼 본질을 쉬이 왜곡시키는 것들은 또 있던가. 그들은 이 치명적인 오류에서 벗어나 처음 그 음악을 접하던 그때의 가슴 떨림을 잊지 않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음악이, 잘난 음악가들이 펼치는 학식의 경연도, 잘난 청중들을 위한 광대놀음도 아닌 우리의 삶 그 자체임을 보여주는 그들. 그럼으로써 '설파' 이전에 '소통'의 미를 보여주는 그들"이라고 코르토와 치프라라는 음악가들을 빗대 그녀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있다.

존경하는 선생님이 있고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도시, 하노버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가 진심으로 반갑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